이 기사는 2020년 05월 12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증안펀드 출자 금융회사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1차로 출자한 1조원이 1개월째 예금성 자산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금융사들은 십시일반으로 최대 10조원을 증안펀드에 내기로 약정하고 1조원을 납입했다. 이후 1개월이 지나도록 수익은 고사하고 조달비용과 기회비용을 눈앞에서 까먹고 있다. 펀드 출범 전후로 코스피가 급등하면서 투자 타이밍을 놓친 탓이다.이번에 조성된 증안펀드 규모는 최대 10조7600억원으로 과거 사례에 비할 수 없이 크다. 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초대형으로 기획됐다. 산업은행과 5대 금융지주 등 23개 금융회사와 한국증권금융 등 4개 유관기관이 자금을 댄다. 이 가운데 금융사들이 10조원을 담당한다. 10조원 중 1조원이 지난 9일 납입되면서 펀드가 출범했다.
하지만 증안펀드 결성 전후로 코스피는 언제 급락했냐는 듯 가파르게 치솟았다. 증안펀드 결성안을 확정한 지난 3월24일 1600포인트 초반을 기웃거리던 코스피는 1개월만에 20% 가까이 올라 1900포인트를 가뿐히 넘었다. 5월 현재 1900포인트 초중반에서 소폭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증안펀드 자금은 갈 곳을 잃고 예금에 잠들었다.
금융사들이 애써 마련해 출자한 증안펀드 자금이 예금에 묻혀 있는 것도 난감하지만 증안펀드를 본격적으로 운용하지 않으면 더 좋다는 식의 투자관리위원회 방침도 논란 여지가 있다. 증안펀드 투자관리위원회는 증안펀드가 수익을 추구하는 비히클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는 출자자 입장에서 손실을 감내하라고 종용하는 논리로 해석될 수 있다.
증안펀드가 가동될 상황이 오지 않는 게 베스트인 건 사실이지만 증안펀드가 운용되지 않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더블딥'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만큼 애초 정한 투자 타이밍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 바라보고 '대기중'이라는 명목 아래 손 놓고 있으면 곤란하다.
지수가 빠질 때까지 자금을 놀리다가는 시장 한 켠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처럼 코스피가 2000포인트를 넘어선 이후에야 주식 투자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증안펀드는 만기가 3년이다. 증시가 어떻게 흘러가든 3년 동안은 운용돼야 한다. 증안펀드 투자 지침을 조금은 유연하게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취지상 증안펀드가 주식에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건 합당하다. 하지만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대기 기간에 예금성 자산밖에 편입할 수 없도록 정한 지침은 출자자들의 권리를 살피지 않은 조치다. 머니마켓펀드(MMF)나 채권이라도 담아 운용해서 최소한 출자자들에게 기회비용을 감안한 '원금'은 보전해 줘야 한다. 주식 아니면 예금밖에 할 수 없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증안펀드 투자관리위원회 지침을 손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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