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임원 '수십명' CB매입 러시 이유는 이용배 사장 비롯 임원 20명 청약…매력적인 전환단가, 2009년 기아차 BW 사례 기대
김성진 기자공개 2020-06-25 17:47:04
이 기사는 2020년 06월 23일 10: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현대로템이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 전환사채(CB) 발행에서 화제가 된 것은 청약 흥행 뿐만이 아니었다. 이용배 사장을 비롯해 수십명의 임원들이 청약에 동참한 것도 눈길 끌었다. 주요 경영진들이 신주 등 자사주를 사들이는 일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수십명이 동시에 CB 청약에 몰린 것은 흔한 일은 아니란 평가다.현대로템은 지난 18일 일반공모 CB 발행을 진행한 결과 2400억원 규모의 청약이 결정됐다고 공시했다. 전체 발행금액 2400억원 중 구주주청약 배정금액은 745억원, 일반공모 청약을 통한 배정금액은 1655억원으로 구성됐다.
현대로템의 이번 CB 일반공모는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1655억원 모집에 무려 7조8986억원의 청약이 몰리면서 청약 경쟁률은 48대 1을 기록했다. 앞서 현대로템은 지난 5월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청약권을 부여했으나 현대자동차 등 주요주주들이 청약에 불참하며 1655억원가량의 실권주가 발생했다.
특이한 것은 현대로템의 임원들도 이번 청약 러시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이번 CB 매입에는 이 사장을 비롯해 무려 20명의 임원들이 함께 참여했다. 현대로템의 '증권발행실적보고서'가 공시된 이후 '임원·주요주주 특정증권 등 소유상황보고서'라는 이름의 공시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이용배 사장이다. 이 사장은 이번 청약을 통해 전환권 행사 시 1612주에 달하는 1600만원어치의 CB를 사들였다. 이 사장이 올 초 현대차증권에서 현대로템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주식 성격의 자산을 취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 김두홍 재경본부장, 최동현 철도사업부장, 이경필 경영기획실장, 김익수 경영지원사업부장, 안경수 방산사업본부장, 정보근 생산본부장 등 총 20명이다. 올 1분기 현대로템 분기보고서 ‘임원 및 직원 등의 현황’에 기재된 임원이 총 23명(사외이사 제외)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원 대부분이 이번 청약에 참여한 것이다.
20개의 공시를 모두 살펴본 결과 이번 공모에서 가장 많은 CB를 사들인 임원은 안경수 방산사업본부장(1819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C레벨 임원들이 자사주를 사들이는 경우는 많지만 이처럼 단체로 CB 청약에 몰리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최고경영자 등 주요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다소 강제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자사주 매입은 책임경영 의지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주가가 낮은 경우 최고경영자가 스스로 압박을 느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가 있다"며 "새로 부임하는 경우에 특히 자사주를 많이 사들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CB 매입 러시는 다소 다른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번 CB 일반공모가 대박을 친 이유로는 비교적 낮은 전환단가가 꼽힌다. 전환단가는 9750원으로 현재 현대로템의 주가(22일 종가 1만4500원)와 비교하면 약 70% 수준이다.
향후 보통주로 전환한다면 매입가 대비 50%의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CB의 보통주 전환은 오는 7월 17일부터 가능하다. 현대로템 임원들이 CB매입 러시에 나선 배경에도 이러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많은 CB를 매입한 안경수 방산사업본부장의 경우 한 달 뒤 보통주 전환 후 주식을 매각한다면(현재 주가 가정시) 약 900만원의 차익 실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정도 수익을 목표로 CB를 매입한 것으로 아니라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장기적으로 현대로템의 주가 상승을 예상하고 매입한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기아자동차는 4000억원어치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당시 투자자들은 기아차 주가가 급등하면서 10배에 달하는 대박을 경험했다. CB와 BW의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메자닌이라는 점에서 주가 업사이드에 따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어떤 전략적인 지침이 있었다기 보다 단지 전환단가가 낮게 형성돼 차익 기회가 높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임원들의 중장기적인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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