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회계법인, 사전검증 시장 참전 준비 끝났다 [공공기관 SRI채권 전망]⑥원화 시장 개척 공로 '톡톡', 삼정·안진 '약진'…수익성은 과제
이지혜 기자공개 2020-08-13 13:31:17
[편집자주]
코로나19 사태가 SRI채권 시장 만큼은 비껴갔다. 견고한 신용도를 보유한 공공기관이 주도한 덕분이다. 산업은행이 첫 원화 SRI채권을 발행한 이래 주택금융공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다. 올 상반기까지 SRI채권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제 양적 성장보다 질적 관리다. 사전검증, 사후보고 과정 등으로 관심이 기운다. 공공기관 SRI채권의 발행 과정과 관리 적정성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8월 11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공기관이 원화 SRI채권(사회책임투자채권, ESG채권) 시장의 앞단에서 뛰고 있다. 그러나 혼자 뛰는 것은 아니다. 러닝메이트가 있다. 바로 회계법인이다. 삼정KPMG 등 회계법인은 국내에서 SRI채권 관련 자문을 선두적으로 진행하는 등 시장을 여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SRI채권을 낯설어하는 발행사에게 절차와 필요성을 알리는 등 시장 확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회계법인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를 기점으로 원화 SRI채권 시장에 삼일PwC에서부터 삼정KPMG, EY한영, 딜로이트안진까지 국내 회계법인 ‘빅4’가 모두 참전했다.
물론 국내 SRI채권 사전검증 시장은 아직 큰 이익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검증비용이 낮은 데다 시장도 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앞을 내다본다면 소홀히 할 수도 없다. 향후 사후보고도 외부검증을 받는 문화가 정착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SRI채권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사전검증이 또다른 수익원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거래소 SRI채권 세그먼트에 따르면 SRI채권 관리체계 사전검증을 진행한 회계법인에 올 들어 딜로이트안진이 추가됐다. 이로써 삼일PwC에서부터 삼정KPMG, EY한영, 딜로이트안진까지 국내 ‘빅4’ 회계법인 모두 SRI채권 사건검증 경험을 쌓았다. 이밖에 CICERO와 서스테이널리틱스 등 외국계 기관도 원화 SRI채권 사전검증 기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SRI채권 사전검증 등을 진행할 기관으로 회계법인의 중요성은 작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SRI채권으로 인정받으려면 사전검증이 중요한데 이를 진행할 외부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야 한다”며 “국내 회계법인 4곳은 적격인증기관으로서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를 비롯한 국내 관련 기관들은 SRI채권과 관련해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와 국제기후채권기구(CBI)의 기준을 따른다. 국내 회계법인 4곳은 국제기후채권기구를 기준으로 사전검증 등을 진행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췄다.
사전검증을 가장 많이 진행한 곳으로는 삼정KPMG가 꼽힌다. 2018년 5월 KDB산업은행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화 녹색채권을 찍으면서 SRI채권 시장을 열 때부터 함께했다. 삼정KPMG가 사전검증을 진행한 발행사 수는 모두 8곳에 이른다.
발행사 종류도 다양했다. KDB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외에 신한은행과 우리카드, 현대캐피탈 등 민간 금융기업도 고객으로 뒀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과 GS칼텍스, SK에너지 등 비금융 민간기업 포트폴리오까지 확보하며 SRI채권 사전검증 시장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러나 올 들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SRI채권 사전검증시장에서 활약했던 삼정KPMG지만 올 들어서는 단 한 건도 수임하지 못했다. 반면 딜로이트안진이 약진했다. 딜로이트안진은 2018년과 2019년에는 단 한 건의 사전검증도 맡지 못하다가 올 들어 기업은행, KDB산업은행, 신한카드, KB카드, 현대캐피탈 등을 고객으로 두며 단숨에 발행사 수 기준 2위로 치고 올라왔다. 2018년부터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쌓아왔던 EY한영과 동점이다.
딜로이트안진의 포트폴리오도 의미가 깊다. KDB산업은행은 올해 초 녹색채권, 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을 아우르는 표준관리체계를 만들어 딜로이트안진에서 인증을 받았다. 세 가지 SRI채권을 모두 포함한 표준관리체계를 만든 것은 KDB산업은행이 국내에서 처음이다.
◇점유율 경쟁 이르지만…
SRI채권 시장에 국내 주요 회계법인이 참여하긴 했지만 시장점유율을 논하기 이르다는 지적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시장이 워낙 초기 단계인 데다 각 조직이 안정기에 이르지도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SRI채권 사전검증 작업에서 큰 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발행사와 관계, 시장 형성에 의미를 부여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4곳은 각각 SRI채권 사전검증을 진행할 수 있는 조직을 두고 있다. 인력은 삼일PwC, 삼정KPMG, EY한영 등이 15명 정도이고 딜로이트안진이 20여명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회계법인 간 인력이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에도 삼정KPMG인력이 딜로이트안진으로, 삼일PwC 인력이 EY한영으로 옮겨 가 관련 업무를 맡았다.
더욱이 각 회계법인의 이런 조직들은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관련 컨설팅을 정부와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SRI채권 사전검증 업무는 부수적 업무에 머물러 있다. 기업과 네트워크를 쌓거나 ESG 관련 자문 서비스 중 하나로서 사전검증 업무가 취급되는 셈이다.
사전검증 수수료가 적은 데다 시장이 초기 단계인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7월 수요예측을 거쳐 공모채로 녹색채권을 발행한 TSK코퍼레이션은 사전검증 수수료로 1500만원을 EY한영에 지급했다. 다른 회계법인에서도 인증수수료를 1500만~3000만원가량 받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국기관과 경쟁을 벌이면서 수수료가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스테이널리틱스 등 일부 외국계 검증 기관이 사전검증 비용을 받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더욱이 SRI채권 관리체계를 한 번 검증받고 나면 내용이 바뀌지 않는 한 사전검증을 또 받지 않아도 SRI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수익을 낮추는 또다른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이 시장을 소홀히 할수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향후 사전검증뿐 아니라 해마다 발행하는 사후보고도 외부기관에서 인증을 받는 시스템으로 점차 바뀔 것”이라며 “사후보고는 많은 발행사들이 해마다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수익원이 될 수도 있는데 기업과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서라도 사전검증 영업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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