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업 리스크 점검]상호금융은 빗장 풀리는데…70년대 영업규제에 발목⑤신협 여신구역 확대에 지방사 '아사' 직전…비대면 등 현실성 고려 필요
이장준 기자공개 2020-09-09 13:00:00
[편집자주]
'저축은행 사태'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촘촘한 규제 속에서도 상당수 저축은행들이 고속 성장을 이루며 체질을 개선한 양상이다. 문제는 양극화다. 일부 대형사는 지방은행을 넘어설 만큼 수익성이 나아졌지만 지방 중소형사는 경쟁력을 잃었다. 당국 규제 완화를 통한 재편 필요성이 제기된다. 생사기로에 다시 서게 된 저축은행들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9월 07일 08: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2년 저축은행의 설립 취지는 지역 서민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있었다. 영업구역 내 대출 비중을 관리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고객들은 지역 내 저축은행에 의존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더 높은 수신금리, 더 낮은 대출금리를 주는 곳을 찾는다.영업구역 의무대출은 저축은행의 성장을 가로막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만 되고 있다는 평가다. 상위 10개사가 모두 수도권에 뿌리를 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 와중에 금융당국이 신용협동조합의 여신 구역 확대를 약속하면서 지방 중소형사를 '고사 직전'에 몰아넣었다는 지적도 있다.
◇상위사 영업구역 수도권·비대면…취지 퇴색한 의무대출 규제
저축은행의 영업구역은 상호저축은행법에 의거해 크게 6개로 나뉜다.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경기도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강원도 △광주광역시·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특별자치도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충청남도·충청북도 등으로 구성돼있다.
산하 시행령 등에 따르면 저축은행 영업구역 내 지역에서 발생한 여신은 전체 여신의 40%(수도권은 5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른바 '영업구역 의무대출 비율'이다. 이를 어기면 금융감독원 제재를 받는다.
문제는 권역별로 인구 차이가 크다는 데 있다. 수도권에 주요 저축은행 쏠림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인구는 2602만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50.2%를 차지한다.
특히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 대출은 서울지역에 집중됐다. 당시 부실 처리를 위한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대형사들은 복수의 영업구역을 확보했다. 이들은 복수 영업구역을 합해 의무대출 비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서울 지역에 대출이 몰려도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 서울과 지방에 복수 영업구역을 확보한 저축은행은 총 19개사다.
한국금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서울지역 대출 비중은 전체의 57.1%까지 확대됐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영업구역을 둔 저축은행들이 타 지역 저축은행보다 고속 성장하게 됐다.
현재 총자산 규모 기준 10대 저축은행 중 7개(SBI·OK·웰컴·애큐온·유진·JT친애·OSB)가 서울에 영업구역을 두고 있다. 3월 말 기준 서울에 영업구역을 둔 23개 저축은행의 총자산이 전체의 57%를 차지했다. 경기·인천까지 확대하면 대형사 중에 페퍼·한국투자·모아저축은행까지 포함된다. 상위 10개사가 모두 수도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비대면이 일상화된 만큼 규제가 본래 취지를 잃어버렸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더 이상 고객이 거주지역 내 저축은행만 이용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다. 가령 웰컴저축은행의 적금상품 '웰컴통뱅킹'의 경우 5월 기준 자체 모바일뱅킹 앱 '웰컴디지털뱅크(웰뱅)'를 통해 가입한 고객 중 12%가 영업점이 없는 제주도·전라도·대구·경북 지역에 속한다.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만큼 물리적인 영업 구획은 의미가 없어졌다"며 "지방 중소형사가 살길을 터줘야 서민금융기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여신 영토 넓히는 신협…위협받는 지방 저축은행
중소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상호금융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앞서 5월 신협의 영업구역을 확대하는 걸 골자로 한 신협법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부결됐다. 당장 영업구역 확대는 무산됐지만 금융위원회가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여신구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7월 금융위 입법 예고에 따르면 신협의 비조합원 대출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권역 내 대출을 조합원 대출로 간주하되 권역 외 대출을 3분의 1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는 해당 지역에서 조합원을 모집하고 여수신 업무를 할 수 있고, 다른 지역 조합원이 대출을 신청하면 권역 외 대출로 간주해 한도에서 차감된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부산 조합원이 울산이나 경남 신협조합에 가서 대출받아도 권역 외 대출 한도로 잡히지 않는다.
그만큼 2금융권 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신협의 여신 권역이 확대되면 업계 전반적으로 영향을 많이 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개인신용대출뿐 아니라 조합끼리 사업자대출이나 PF에 같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아 저축은행 먹거리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 중소형사의 경쟁력이 떨어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에서 서민금융 보증상품을 만들어 저축은행을 창구로 활용하는 등 중소형사를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며 "비대면 대출은 예외로 인정해주는 등 영업구역 의무대출 규제를 완화할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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