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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채권 인증시장 '온실' 안되려면 [thebell note]

이지혜 기자공개 2021-03-25 13:06:26

이 기사는 2021년 03월 23일 07: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온실 속 화초' 고난을 겪지 않고 곱게만 자란 사람을 뜻한다. 비단 사람에만 이 말이 쓰이는 건 아닌 듯 하다. 때로 정부가 시장을 온실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정부규제로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소수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엄격하게 감시가 잘 이뤄진다면 기업이 강인한 생명력을 갖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현실에 안주한 채 경쟁력을 잃는 ‘화초’도 있다.

환경부의 움직임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환경부는 현재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용역을 맡기고 녹색채권 인증기관의 자격기준을 만들고 있다. 수천만원의 사전검증 비용을 지원해 녹색채권 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단 적격 기관에서 인증 받은 기업만 지원하는 것이 환경부의 복안이다.

환경부의 입장은 충분히 납득된다. 조직과 체계가 허술한 기관에서 녹색채권이라고 인증받은들 투자자에게 신뢰받기 어렵다. 자칫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무늬만 녹색’)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기업에게 비용을 지원한 환경부도 부정수급 관련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환경부의 인증기관 자격기준은 자칫 경쟁자의 등장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녹색채권 인증실적이 있는 기관을 중심으로 자격기준을 만들고 있다”며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는데 환경부가 벌써 울타리를 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녹색채권 등 원화 SRI채권 시장은 2018년 열렸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삼일PwC 등 빅4 회계법인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올 들어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자 SRI채권 인증시장은 활력을 얻었다. 회계법인들은 신용평가사와 MOU를 맺거나 SRI채권 사후관리 서비스 강화를 내세우는 등 전략을 취했다. 신용평가 3사도 보고서의 질을 높여 차별화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이 서비스 질 향상, 경쟁력 제고 등 긍정적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최근에는 법무법인이 시장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돈다.

같은 기간 시장에서 쳐지거나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뗀 기업의 소식도 들려온다. 사업은 개시했지만 수주실적이 전혀 없거나 최근 몇 년간 인증실적이 없는 기업, 인력이탈로 업무공백이 생긴 기업 등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한두해만 지나도 시장참여자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며 “시장이 직접 적격 인증기관을 가려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녹색채권 인증기관 자격기준은 이르면 하반기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녹색채권의 활성화는 ESG경영으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발행사의 비용부담을 덜겠다는 환경부의 뜻은 좋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 본연의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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