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3월 31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3월의 마지막 날이다.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가 집중되는 특정 기간을 의미하는 '슈퍼 주총 시즌'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올해 주총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ESG위원회'의 신설이다. 내로라하는 주요 기업들이 주총 시즌과 맞물려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설치했다고 홍보하기에 바빴다.현대차는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LG그룹 역시 상장된 주요 계열사 내부에 ESG위원회를 신설한다. SK그룹도 지주회사인 SK㈜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포스코도 주총에서 최정우 회장의 연임 확정과 함께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GS와 ㈜한화도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 된 ESG 경영이 제도적으로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이사회는 주주총회와 함께 현대 기업경영의 꽃으로 불린다. 국내 상법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해 이사회에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는 등 경영진을 관리 감독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ESG위원회는 의무 설치 사항이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설치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린 ESG 경영에 대한 강한 열망과 의지가 읽힌다.
일각에선 단순 보여주기 식 행보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이사회 산하에 ESG 관련 소 위원회가 존재하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지배구조(G)와 관련된 ESG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ESG위원회 설치가 눈앞에 닥친 ESG 평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ESG위원회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검증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나 일정 규모 이상의 내부거래를 심의하고 의결하는 내부거래위원회 등과 비교할 때 ESG위원회의 역할은 모호하다.
경영 전략이나 중요한 투자 관련 사항은 모두 ESG위원회의 검증을 거치도록 구조를 바꿨다고는 하지만 일단 경영 현안에 'ESG'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반대를 할 명분이 사라진다. 이사회의 주요 역할과 기능은 경영진의 감시와 견제에 있는데, ESG위원회 역시 또 하나의 거수기 역할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 계량화 작업을 수년 전부터 진행해 온 SK그룹의 행보가 눈에 띈다. SK그룹은 ESG 경영을 성과 평가에 반영하고 이를 외부에도 공개하고 있다.
30일 '생존의 시대, ESG에서 답을 찾다' 주제로 열린 더벨 경영전략포럼에 참석한 남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소셜밸류위원회 소셜밸류추진팀 담당 부사장은 ESG경영 참고 사례로 유니레버와 바스크 같은 글로벌 기업을 꼽았다.
남 부사장은 "유니레버는 ESG 관련 정량적인 지표가 마이너스이거나 전년보다 좋지 않아도 이를 숨김없이 발표한다"면서 "이렇게 축척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ESG 관련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고 말했다.
ESG위원회를 설치하며 ESG 경영을 하겠다는 기업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실천이다. 구호에 그친 메아리는 공허하다. ESG 경영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고 올해 ESG 경영 성과는 지난해 대비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점이 개선됐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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