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간판만 ESG펀드 '경고장' 꺼내들었다 [ESG 그린워싱 주의보]①채권형·주식형펀드, 상품비중·세부설명 권고…ESG펀드 뭉칫돈, 경계심 환기 구두 지도
양정우 기자공개 2021-06-24 13:09:10
[편집자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국내외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자금 조달의 주체인 기업은 ESG 등급에 사활을 걸고, 투자를 주도하는 운용사는 ESG 요소를 감안해 타깃을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물결이 워낙 빠른 속도로 이는 탓에 '위장 ESG'라는 빈틈도 생기고 있다. 더벨이 국내 ESG 시장에서 불거지는 그린워싱(green washing) 우려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6월 22일 10: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펀드 전면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내세워 뭉칫돈을 모은 자산운용업계에 금융 당국이 경고장을 내밀었다. ESG를 간판으로 내건 펀드에 관리와 감독의 의지를 드러내며 이른바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 운용사에 철퇴를 가할 채비를 하고 있다.22일 자산관리(WM)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복수의 대형 운용사를 포함한 운용업계를 상대로 ESG펀드 운용에 대한 구두 지도를 벌였다. 운용 기준에 대한 세부 지침과 징계 수위를 제시하기보다 일단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심을 환기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SG펀드를 운용하는 실무진을 중심으로 금융감독원에서 구두 경고를 받았다"며 "채권형과 주식형을 불문하고 운용상 차별화없이 ESG를 내걸 경우 당국에 소명해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형사뿐 아니라 업계 전반에 전달된 사항이어서 ESG가 낯선 하우스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 당국은 채권형 펀드 이름에 ESG를 명기하려면 자산의 절반 이상을 ESG 상품으로 채우는 것을 권장했다. ESG 상품은 신용평가사에서 등급(인증)을 받은 ESG채권이거나 ESG 평가등급이 높은 발행사의 채권 등이다. 어느 정도 수준의 ESG 평가등급이 ESG펀드에 담기 충분한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내부 ESG 평가시스템을 갖춘 자산운용사에 대해서도 견제구를 던졌다. ESG 평가등급은 공신력 있는 외부기관의 지표를 따르는 게 좀더 객관적일 수 있다. 다만 여느 기관에 못지 않게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하우스도 있는 터라 내부 잣대를 쓸 때는 절차와 근거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주식형 펀드의 경우 일단 ESG 투자 전략의 구체적 서술에 방점을 두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ESG를 표방한 공모펀드를 운용할 때 공시하는 투자 전략을 환경 내지 지배구조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ESG 차원에서 주식을 선정하는 프로세스를 기재하도록 유도해 포장만 ESG인 펀드를 걸러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SG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대세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 속한 만큼 자산운용사마다 ESG에 힘을 쏟고 있다. theWM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국내 책임투자형 펀드의 설정액은 5조3462억원으로 집계돼 지난해 말(3조5420억원)보다 50.9% 급증했다. 6개월여 만에 2조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ESG펀드로 유입됐다.
국내 ESG펀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결성한 '한국투자크레딧포커스ESG증권자투자신탁'이다. 이 펀드의 설정액은 지난해 말 6322억원에서 1조5075억원으로 껑충 뛴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달여 만에 5000억원 수준의 자금(지난 4월 말 1조740억원)이 순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하우스가 ESG에 주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공모펀드 시장이 위축 일로를 걷고 있는 점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된 후 주식 광풍이 불면서 펀드보다 직접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공모펀드가 죽을 쑤는 가운데 유독 ESG펀드만 고속 성장하니 운용업계가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의 경고장은 아직까지 '레드카드'로 여겨지지 않는다. 특정 하우스의 개별 펀드 운용을 놓고 주의를 준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늘어나는 ESG펀드와 대규모 자금 유입을 감안해 혹시 모를 그린워싱 리스크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SG 업력이 쌓이지 않은 운용사도 당장 ESG펀드를 운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며 "오랜 기간 ESG를 준비한 경쟁사 펀드의 윤곽만 모방해 운용에 나선 하우스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과 운용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ESG 경쟁력을 갖추려면 사전에 그린워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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