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DB 머니무브]최소적립률 100%에 치솟는 임금상승률 '활로찾기 사활'②운용수익·성과 확대 부담…기업 태세 전환에 주목
양정우 기자공개 2022-05-16 08:07:42
[편집자주]
172조원 규모에 육박하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본격화 되고 있다. DB 적립금은 오랜기간 예·적금과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돼 왔지만 최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속속 옮겨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DB 적립금 시장 변화 판도를 더벨이 진단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5월 11일 15:2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70조원에 달하는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 자금이 머니무브에 돌입한 건 규제 강화와 경영 환경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올해부터 법제화된 DB 최소적립비율 100% 조항은 기업마다 재무건전성와 직결되는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임금상승률이 치솟으면서 어떤 식으로든 DB 자금의 운용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DB가 회계 언어로 표현되는 퇴직급여부채는 복합한 보험수리적 방식에 따라 산출되는데 결국 임금상승률이 상승할수록 기업 입장에서 짊어져야 하는 빚 부담이 불어난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의존할 경우 재무 여력과 현금창출력이 후퇴하는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인플레·셀러리 'UP', 퇴직급여채무 확대 가속…부채 부담 완화 키 '운용수익률'
SK하이닉스가 DB 자금 일부를 실적배당형 상품에 분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자 운용업계 전반을 상대로 태핑(수요조사)에 나선 건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SK그룹은 국내 그룹사의 경영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중요성을 가정 먼저 간파했고 국내 기업지배구조 이슈에도 발빠르게 대응해 지주사 체제를 완비했다.
SK그룹 계열사는 물론 대기업마다 DB 자금의 머니무브를 검토하는 건 조 단위로 커진 뭉칫돈이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등 경영 성과를 나타내는 재무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회계 처리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연금 파트는 크게 퇴직급여채무(Pension Liabilities)와 확정급여자산(Pension Assets) 계정이 맞물리면서 전개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퇴직연금이 커질 수밖에 없어 기업 회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갈수록 막대해질 전망이다.
퇴직급여채무는 예측급여채무(PBO)라고 불리며 미래 급여 수준에 대한 예상치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지급할 퇴직 급여를 추정한 후 이 추산된 퇴직급여채무 중에서 측정일까지 근무 기간에 해당하는 급여분의 현재가치로 정의된다. 임금상승률, 퇴직률, 사망률, 승급률 등 주요 가정을 기초로 예측단위적립방식(PUCM)이라는 복잡한 계산 산식에 따라 최종 퇴직급여채무의 규모가 산출된다.
이 때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가 임금상승률이다. 임금상승률은 물가상승률과 연공, 승진, 그 밖의 연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임금상승률이 치솟으면 PBO가 증가하는 동시에 재무상태표상 부채의 부담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이 정착된 후 PBO 확대가 큰 이슈로 부상하지 않은 건 대체적으로 임금상승률보다 할인율(통상적으로 우량 회사채)이 높았기 때문이다. PBO가 미래 예상치를 현재가치로 할인한 수치인 만큼 할인율로 쓰이는 이자율도 최종 규모에 영향을 준다. 임금상승률은 PBO의 증가, 이자율은 PBO의 감소로 연결되는 셈이다. 이자율도 상승 기조이지만 근래엔 인플레이션 흐름에 올라탄 임금상승률이 할인율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일자리상황판에 따르면 2018~2019년 명목 임금상승률은 10% 대를 뛰어넘었다. 명목 상승률은 인플레이션까지 합산된 수치다. 올해 1~2월 월평균 임금상승률도 전년과 비교해 7.5%나 뛰어올랐다.
PBO의 팽창 압박을 완화하려면 DB 자금의 운용수익률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국제회계기준(IFRS)상 퇴직연금은 확정급여자산에서 PBO를 차감해 순확정급여자산(확정급여자산>PBO) 내지 순확정급여부채(확정급여자산<PBO)로 최종 산입된다. 실제 운용수익률(Actual return)은 확정급여자산을 확대하는 만큼 결과적으로 순확정급여부채라는 채무 부담을 낮출 수 있는 '키'로 꼽힌다.
WM업계 관계자는 "임금상승률 상승과 PBO 확대는 기업 입장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수치"라며 "하지만 운용수익률은 충분히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손실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지만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이 1% 대에 불과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덧붙였다.
◇근퇴법 개정, 최소적립비율 100% 상향…퇴직연금 운용, 기업 재정 상태 직결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건 퇴직급여 지급 여력을 확대하는 길이기도 하다. 퇴직연금은 기업이 발행한 무담보 회사채보다 선순위 우선변제 권리를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퇴직급여 적립비율 자체가 낮거나 운용수익률이 저조하면 향후 추가 납입에 따른 현금창출력 약화와 기존 채권자에 대한 채무불이행 위험이 증가한다.
지난달 시행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이 DB를 선택했을 경우 최소적립비율(최소적립금/기준책임준비금)을 100%로 상향 조정하는 게 핵심 골자다. 자금수지 여건이 빡빡한 기업은 이 적립비율을 맞추는 것도 부담이 작지 않다.
현재 적립비율이 법정 한도에 못 미치는 기업은 더 많은 현금 유출이 발생하고 향후 유동성 부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적립금 납부에 현금을 소진하는 건 유동성 리스크의 점증뿐 아니라 조달 비용의 확대로도 이어진다. 내부 유보 자금이 감소할수록 신규 투자에 투입할 자금은 단연 외부에서 확보해야 한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퇴직연금 재정 상태가 기업 신용도에 영향을 주는 추가 요인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시각과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적립금 운용의 효율화를 꾀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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