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WM 10대 뉴스]행동주의 펀드 득세, 주주가치제고 공감대 형성얼라인·트러스톤·안다 등 부각…'과도한 간섭' 역기능 우려도
윤종학 기자공개 2022-12-30 09:33:06
이 기사는 2022년 12월 29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2년 행동주의 펀드가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행동주의 펀드는 피투자 기업의 지분을 일정부분 확보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전략을 취한다. 과거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먹튀'하는 세력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 벗어나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편에서 주주가치제고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올해처럼 주식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행동주의를 표방한 하우스의 행보는 각광받을 수 밖에 없다. 주주가치제고에 소극적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행동주의를 벌이면 시장상황과 별개로 그동안 반영되지 않았던 기업가치가 투자자들에게 환원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건전한 행동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투자자 뿐아니라 기업들의 공감대도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얼라인·트러스톤 등 행동주의 하우스 주목…가시적 성과 두각
행동주의를 표방한 하우스들은 올해 주주가치제고 방안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현재도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신생운용사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올해 가장 활발하게 행동주의 펀드를 운용한 하우스로 꼽힌다. 올해 2월 SM엔터테인먼트에 감사 선임을 요구하며 포문을 열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음반판매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시가총액면에서는 현저히 저평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부 주주가 추천한 독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감사 선임이 저평가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VIP자산운용, 타이거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이 얼라인파트너스에 힘을 보태주며 3월 말 열린 주주총회에서 얼라인파트너스 측 곽준호 감사를 선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8월 중순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에 매년 수백억원의 용역비용을 지불하고 있어 주주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두 달여간의 공방을 거치며 10월 SM엔터테인먼트는 라이크기획과 프로듀싱 계약을 조기 종료하기로 했다.
라이크기획과 거래를 단절시키는 데 성공한 얼라인파트너스는 추가로 구조적인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핵심 요구사항 8개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제안사항 4개를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 전달하며 2023년 1월13일을 답변 시한으로 잡았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최근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상증자 지원을 막아서며 적극적인 행동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12월 약 4000억원 규모의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트러스톤운용은 이호진 회장을 비롯한 태광그룹 대주주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흥국생명을 주주도 아닌 태광산업을 통해 지원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후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 외에도 BYC를 상대로도 행동주의를 펼치고 있다. 12월19일 BYC에 주주 공개서한을 발송해 몇몇 문제점과 요구사항들 그리고 상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고지했다. 2조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보유한 데 비해 기업가치가 저평가됐다는 판단이다. 이에 부동산 자산가치 재평가, 일부 저수익 부동산 매각, 부동산 자산의 공모 리츠화 등을 제안해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올해 불쑥 주식시장에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성과로 이어졌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며 "그동안 토양을 닦아온 행동주의 하우스들의 행보가 쌓이고 국내 주식투자자들의 저변도 넓어지며 주주가치제고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전략 여건 마련...역기능 우려는 여전
올해 들어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활발해진 이유는 국내 주식시장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불어온 개인투자 열풍으로 국내 주식시장을 향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이는 주주가치제고에 대한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졌다.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존재감을 보인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소버린자산운용, 허미스인베스트먼트 등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이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가치제고를 요구하며 힘대결을 벌였다. 다만 막대한 차익을 챙기며 떠난 자리에는 '먹튀' 논란만 남겨졌다. 행동주의 펀드에 관한 인식이 최근까지도 좋지 않았던 이유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의 존재감이 커진 것은 2018년 KCGI의 한진칼 경영참여 선언 이후다. 한진칼 지분을 인수하며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에 나서자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관심도를 높아졌다. 경영권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오너일가의 독단적 경영을 방지하고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이끌며 행동주의 펀드의 순기능을 보여준 셈이다.
이렇게 긍정적 시각이 늘어나는 와중에 행동주의 펀드에 힘을 실어줄 개인투자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코로나19 이후 1400만명에 이르는 개인투자자가 생겨났고 거래대금도 3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고 제고시키는데 관심이 늘어난 배경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저변이 넓어진 상황에서 올해 초부터 증시불황이 이어지자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의견들이 더 쉽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시장 환경 변화에 발맞춰 행동주의 하우스들의 행보도 활발해졌고 대상 기업들을 상대로 성과도 낼 수 있었다. 업계에서는 올해 행동주의 펀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2023년에도 열풍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지닌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올 한해 행동주의 하우스들의 행보만 봐도 주주서한을 보내거나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해당 기업의 평판을 흔드는 방식의 적극적 행동주의 전략이 많았다. 사례에 따라서 이런 방식이 꼭 필요할 수도 있지만 혹여 과도한 개입으로 기업 경영활동이 흔들릴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주식시장에서 부각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기업을 압박하는 방식만 주목받는 것은 기피해야 할 것"이라며 "경영진들에게도 기업가치제고 방안을 충분히 설득해 공감대를 얻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행동주의 펀드가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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