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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해적과 통행세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09-15 08:59:02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5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덴만 길목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영화나 뉴스 보도를 보면 소수 해적들이 조잡한 보트를 타고 공룡같은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을 위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로 큰 위험으로 보이지 않고 그다지 자주 일어나는 일 같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다르다. 거대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현대의 해적은 나름 기업화되어 있다. 그리고 배후에 스폰서가 있다. 거래소가 있고 거래소를 통해 참여하는 다수 투자자들은 해적들의 ‘실적’에 따른 분배를 받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11년 당시 이미 소말리아의 해적주식거래소에는 70여 개의 해적단이 상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해적은 약탈한 물건을 현금화 해야 하기 때문에 판로도 있어야 한다. 바나나가 실린 컨테이너, 화학 물질 드럼 컨테이너를 훔쳐봤자 그 자체 해적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로는 대개 멀쩡한 상인, 기업들이다. 해적들이 독자적으로는 제값에 화물을 처분할 수 없으니 거기서 큰 돈을 번다.

사실 역사적으로 해적은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영국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드레이크를 시켜 스페인 배들에 해적질을 하게 했다. 그리고 투자도 했다. 드레이크가 가져온 스페인의 보화로 배당도 받았다. 드레이크는 나중에 영국 해군의 제독이 된다. 현대에도 해적과 해군의 구별이 어려운 나라들이 있고 사략선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일본 해군도 해적에서 출발했다. 미래에는 아예 해군을 보내 남의 것을 뺏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구실은 만들면 그만이고 바다에는 CCTV도 없다.

해적들의 목표물인 대형 선박은 하이재킹에 성공하면 천문학적인 거액을 갖다준다. 보험회사들이 평가하는 컨테이너 한 개의 가치는 평균 45,000달러인데 10,000개의 컨테이너를 싣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평균 4억5,000만 달러 가치의 화물을 보험에 부친다. 선박 자체도 평균 7,000만 달러 가치로 보험에 든다. 해적질이 성공하면, 즉 수많은 종류의 화물 판로도 확보하기 어려우니 그냥 침몰시켜버리겠다고 협박하면 대상 선박의 보험회사로부터 한 건에 400만 달러까지를 벌어 들일 수 있다. 이 수익이 투자자들에게 분배된다. 투자는 현금일 수도 있고 무기나 다른 물건일 수도 있다. 한 투자자는 500달러 가치의 RPG-7을 투자하고 75,000달러를 분배받았다고 한다. 소말리아 해적 산업의 중심지인 하라데레가 부촌이 된 이유다. 해적들은 가난하지만 투자자들은 부자다.

투자자들은 어디서 자금을 조달하고 해적들은 어떻게 운영경비를 마련할까. 해적이든 그 밖의 무장단체든 공통적인 자금조달 방법은 통행세 징수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무장세력들이 곳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도로를 따라 있을 뿐이다.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통행세를 받는다.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하기보다는 도로, 다리, 항로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이 낫다. 이 통행세는 전 세계 합산하면 매년 수십 억 달러에 이른다.

옛 이름이 자이르인 콩고민주공화국(DRC)의 경우 24조 달러 가치의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우라늄, 그리고 희토류 등이 매장되어 있다. 여기에 눈독을 들이는 온갖 반군들은 광산보다는 도로에 집중한다.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광산을 털어보았자 현금 만지기가 어 렵다. 한 학술적 조사에 따르면 DRC의 두 지방에만 800여 개의 체크포인트가 있다. 15km마다 있는 셈이다. 연 수입은 5,000만 달러다. DRC에는 120여 개의 반군그룹들이 활동 중이다.

아프가니스탄도 통행세 장사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산악국가여서 전국을 커버하는 환상형 도로가 딱 하나 있다. 카불과 간다하르 사이를 중심으로 수백 개의 체크포인트가 성업했다. 그런데 탈레반이 나타나 무수히 많은 체크포인트를 파괴했고 사업체들과 나아가 국민적인 지지를 얻게 되어 주도 세력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탈레반도 통행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아프간에는 10,000개가 넘는 탈레반 운영 체크포인트가 있다. 카불과 간다하르 노선에서만 하루 20만 달러의 수입이 나온다.

이라크, 미얀마, 시리아, 예멘 등지에서는 한술 더 떠서 지역 정부 관리들이 체크포인트를 무장 집단들에게 대여해 준다. 물론 상납을 받을 것이다. 한번 통행세를 납부한 차량에게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고 자기들 관할의 도로만 사용하게 하는 기법도 사용된다. 다른 세력이 관할하는 도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테러를 가해 위험한 도로로 만드는 방식의 영역 다툼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위험한 지역이라고 여기는 나라들에서 실제로 위험한 지역은 도로와 그 부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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