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9월 01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프랑스 칼레에서 바닷가 언덕에 오르면 바로 코앞에 영국이 보인다. 도버 해안의 절벽이 흰색이기도 해서 폴짝 뛰어 건널 수 있을 것 같이 가깝게 느껴진다. 바로 이 좁은 바다가 세계의 역사를 좌우했다. 아무리 좁아도 바다는 바다여서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육군을 영국에 상륙시키지 못했다.도버해협의 폭은 34km다. 옛날에 트로이가 차나칼레를 지키고 앉아서 그랬듯이 영국 해군이 통행세를 받기 딱 좋은 곳이다. 프랑스도 그럴 수 있지만 프랑스는 부자인 데다가 그 목적으로 해군을 따로 양성할 필요는 없었던 나라다. 이곳을 피하려면 북해를 돌아다녀도 되는데 멀어지기도 하고 북해는 거칠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로마인들이 물러간 후 영국섬은 대혼란과 잔인한 폭력의 시대를 맞는다. 색슨족과 북쪽에서 온 바이킹이 수 세기를 싸웠고 스칸디나비아에서 내려와 도버해협 건너편에 정착, 거의 프랑스인이 되어있던 노르만족의 침략으로 정복당했다. 결국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로 정리되었는데 아직도 월드컵 축구에서 3개 팀이 나올 수 있다.
영국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항상 유럽대륙을 경계했고 대륙 국가들 사이가 좋지 않게 하는데 주력했다. 교묘하게 잠재 적국들을 조종했다. 대륙에서의 판도에 따라 이 나라 저 나라 바꾸어가면서 동맹을 맺었다. 특히 러시아를 경계했는데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을 번번히 가로막았다. ‘그레이트 게임’까지 치렀다.
그러나 영국의 노력은 2차대전에서 겉치레만 승전국이 되면서 종결되었다. 영국은 자신이 패전했다는 것을 알았고 영웅적으로 전쟁을 이끌었던 처칠은 국민들에게 팽당했다. 역사상 현재 기준으로 모두 117개국을 침략했던 영국은 옛 영화가 끝났음을 인정했다. 대대손손 부잣집 영국은 가난해져서 이후 영국해협에 터널이 생기고 EU에도 가입하면서 유럽대륙과 연결되게 된다.
그러나 영국은 EU에 가입하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통화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파운드화를 유지한 것이 그 예다. 영국은 다른 EU 국가들이 보기에 얌체 같다고 할 정도로 필요한 만큼만 동행했고 국민 중 상당수는 이민자 통계조차 금지하는 프랑스에 불만이었다. 난민도 문제지만 영국은 테러리스트들의 자유 이동에 주단을 깔아 준 EU 통합에 분개했다.
2015년 11월 파리에서 일어난 대규모 테러가 유럽에 경종을 울렸다. 테러리스트들은 시리아 난민들 틈에 섞여 들어왔다. 순식간에 EU 국가들은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목적이 무엇이든 EU 내 개별국가의 국경통제는 역내 자유이동이라는 EU의 대원칙을 허무는 처사다. 불안해진 영국인들은 2016년에 결국 브렉시트라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된다. 2020년부터 영국 국경은 영국이 통제한다. EU 회원국들 간에 조성된 불신과 혐오를 해협 건너 불구경해도 된다. 그 대신 산업 인력 부족을 필두로 사회적, 경제적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브렉시트 찬성에 후회하는 영국인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영국의 이런 행동이 스코틀랜드를 고무시켰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1314년 6월 24일 브루스(Bruce)가 배녹번 (Bannockburn) 전투에서 승리해 독립을 쟁취했다. 여기서 잉글랜드는 약 1만 명의 병력을 잃었으나 스코틀랜드는 단 두 명의 기사가 전사 했을 뿐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1707년에 다시 대영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를 상속받아 세 왕국이 통합된 것이다. 허탈하다. 그렇게 영국과 통합되었던 스코틀랜드는 19세기부터 자치를 요구했고 최근에는 분리 움직임을 보여왔다. 영국이 EU에서 떨어져나왔으니 스코틀랜드도 영국에서 떨어져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브렉시트에 실망한 EU도 스코틀랜드는 다시받아줄 용의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스콕시트라는 말이 생겼다.
역사의 격동기 동안에도 영국섬 북부에 살았던 스코틀랜드인들은 정체성을 그런대로 잘 유지했다. 지세가 험해서 누구도 거기까지 손을 뻗치기 어려웠다. 별로 탐나는 땅도 아니었다. 오히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내려와 민폐를 끼치는 것을 막으려고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영국섬을 가로지르는 성벽을 쌓기도 했다. 중국 진시왕의 만리장성 뺨치는 황당 프로젝트다.
문제는 영국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북아일랜드 독립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를 수 있고 13세기에 잉글랜드에 편입된 웨일즈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 있다. 이미 웨일즈 주민 52%가 독립 찬성이라는 조사도 있다. 스코틀랜드처럼 요란하지 는 않아도 웨일즈 분리주의도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에도 파장이 가능하다. 내부에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스페인과 중국은 질색을 할 것이다. 벨기에, 이탈리아, 캐나다 같은 잠잠하던 지역들 사정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엉성하게 합쳐놓은 나라다. 남북이 서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갈라서도 이상할 것이 없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처럼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데 갈라선 사례도 있다. 스코틀랜드 북동쪽 노던제도의 자치권 요구도 거세질 것이다.
다음은 영국 경제를 떠받치는 북해 해저유전 문제다. 북해 유전 덕분에 영국은 에너지 자립국인 동시에 수출국이다. 그런데 북해 천연 가스전은 대부분 스코틀랜드의 EEZ에 속해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는 순간 그 가스전은 영국에서 떠나게 된다. 북해 유전과 가스전이 고비용이기는 하지만 인구가 550만 정도에 불과한 스코틀랜드는 부자가 되고 영국은 그만큼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고 해도 바로 안보에 필요한 군사력을 갖출 수는 없을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EU는 고사하고 나토 가입에도 시간이 걸릴 터인데 그러면 러시아 북해함대의 움직임이 상당히 편해진다. 러시아는 무르만스크 인근에 특이한 기후 조건 때문에 부동항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은근히 기대함직 하다.
영국이 인정하지 않아도 스코틀랜드가 독자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를 구성해버리면 사실 대책이 없다.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침공해 점령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제사회가 신생 독립국 스코틀랜드를 승인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면서 애매한 상황이 조성되고 지속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랬고 지금도 코소보, 리비아, 트란실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애매한 지역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독립 관련 2014년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는 55% 반대로 부결되었는데 요즘의 여론은 다르다. 인구구조가 달라져 독립을 지지하는 젊은 층 유권자 비중이 증가했다. 2021년 선거에서는 독립을 지지하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그래서 2023년 10월 19일에 다시 투표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2022년 11월에 영국 대법원이 스코틀랜드 의회는 그럴 권한이 없고 영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주민투표가 가능하지 않다고 판결해 상황은 불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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