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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아래로 내려온 이복현 금감원장 [thebell desk]

고설봉 금융부 차장공개 2024-03-04 12:41:28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8일 07: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달 초 개최된 2024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발표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금융범죄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리스크까지 어느 하나 손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2층 대강당에 마련된 회견장엔 수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저마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곱씹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단상 위를 둘러봐도 기자회견 준비는 돼 있지 않았다. 업무계획 발표를 위한 강연대와 마이크도 없이 비워져 있었다. 이 원장의 자리는 단상 아래 맨바닥에 마련됐다. 작은 책상 하나와 마이크가 전부였다. 연단 위에 크고 넓은 설교대를 놓고 진행했던 2023년 기자회견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이 원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업무계획에 담긴 현안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홍콩H지수 ELS 부실과 금융사 현장검사, 태영건설 워크아웃 및 부동산 PF발 위기대응, 글로벌 IB들의 불법공매도 및 공매도 제도개선, 보험사기와 불법대부 등 민생침해 금융범죄 철결 등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주제들이다.

국내외 금융시장은 끝을 알수 없는 리스크 우려에 그 어느 때보다 위축돼 있다. 변동성이 큰만큼 아주 작은 이슈가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큰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범죄는 날로 교묘하게 진화하며 시장 혼란을 가중 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양면성을 보인다. 시장 개입에 대한 필요성이 여러 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당국의 개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많다. 적당한 선에서 당국의 역할이 멈추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크다. 시장 참여자들의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이 원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이 원장은 취임 뒤 계속해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현안에 대응해왔다. 레고랜드 사태를 시작으로 최근 태영건설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PF 리스크까지 쉴 틈이 없었다. ‘이런 돌발 이슈도 해결할 수 있나 보자’는 것처럼 시장은 점점 난도 높은 현안을 이 원장 앞에 떨어뜨렸다.

난도 높은 현안을 풀어내는 이 원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비난도 커졌다. 시장의 평가는 이슈와 이해 관계자들의 유불리에 따라 엇갈렸다. 어떤 측면에선 관치금융이란 프레임으로 이 원장에 대한 날선 비판이 확산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 원장은 몸을 낮추며 템포를 쉬어가는 자세를 보였다.

이번 신년 기자회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들만큼 시급한 현안이 지뢰처럼 펼쳐져 있는 가운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해결책도 제각각이다. 서로 다른 견해는 저항과 반발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를 넘는 과정에서 자칫 의도를 의심받지 않기 위해 이 원장은 몸을 더 낮춘 것은 아닐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안정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이 원장의 모습에서 당국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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