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 아트]저변 넓힌 국내 클래식 음악...한화의 '힘'교향악축제 25년째 후원, 클래식 장르 최장기간 최대금액…한화클래식·청소년오케스트라 운영
고진영 기자공개 2024-05-02 10:30:09
[편집자주]
기업과 예술은 자주 공생관계에 있다. 예술은 성장을 위해 자본이 필요하고 기업은 예술품에 투자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얻는다. 오너일가의 개인적 선호가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격도 갖고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예술 관련 법인의 운영현황과 지배구조, 소장품, 전시 성향 등을 더벨이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4월 29일 15: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년 봄이면 전국 오케스트라가 모여 '교향악축제'가 열린다. 1989년,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 개관 1주년을 맞아 시작한 공연이다. 공연시설이 변변찮던 국내에서 클래식음악 전용 무대는 음악당 콘서트홀이 유일했다.설립 첫 돌을 기념해 교향악축제를 개최했는데 이때만 해도 독창회나 독주회 없이 순수 악단 그것도 지방 악단끼리 공연을 벌이는 일은 전례가 드물었다. 하지만 당시 예술의 전당은 마땅한 콘텐츠가 없었고 지방 오케스트라들은 무대가 부족했다. 서로 이해가 맞았다.
축제는 금난새 지휘로 KBS교향악단과 안 트리오 자매의 협연.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을 연주하며 막을 열었다. 첫 행사의 반향은 의외로 컸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교향악단이 단독으로 서울무대에 설 기회는 흔치 않다 보니 매년 지속했으면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렇게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존폐 위기' 교향악축제 되살린 김승연 회장
십수년간 이어지던 교향악축제가 위기를 맞은 것은 2000년 즈음이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코리안심포니, 서울심포니 등 민간교향악단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받던 메세나 형태의 문화지원이 중단됐다. 국내 교향악축제도 위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맥이 끊길 뻔했던 교향악축제는 '한화와 함께하는'이라는 수식어로 되살아났다. 2009년 예술의 전당이 고마움의 표시로 김 회장에게 종신회원증을 전달하기도 했다. 종신회원제 1호 회원이 김 회장이다. 또 후원 20년째인 2019년엔 후원기념 명패를 만들어 음악당 로비 벽면에 설치하는 제막식까지 가졌다.
이제 한화는 25년째 교향악축제를 단독 후원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 자체 예산과 한화의 후원금으로 축제가 진행된다. 클래식 장르에선 국내 최장기이자 최대금액 후원 사례로 꼽힌다. 교향악축제 관람 티켓이 일반 오케스트라 공연 절반 수준인 1만~5만원에 불과한 것도 한화의 후원 덕분이 크다.
올해 역시 ‘한화와 함께하는 2024 교향악축제’가 이달 3일부터 28일까지 열렸다. 전국 23개 교향악단과 23명의 지휘자, 협연자 27명, 관객 9만여명이 참여해 성료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오케스트라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교향악축제는 초기에 기획의 질보다 양적 팽창에만 신경 쓴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방 각지에서 악단을 결성하는 계기가 되면서 교향악계 발전에 기여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처음 교향악축제엔 11개 악단이 참가했으나 이제 규모가 그 두배 수준으로 늘었다.
지방 교향악단들은 교향악축제에 초청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연주력과 티켓 판매를 두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이런 오케스트라간 비교 경쟁은 서울과 지방 오케스트라들간 연주기량 격차를 줄이는 촉발제 역할을 했다.
한화 관계자는 " 예술의전당과 한화의 협력관계는 예술단체와 기업의 상생협력 모델"이라며 "기획사와 협찬사로서의 형식적 관계를 넘어 공연의 발전적 협력을 함께 도모하는 돈독한 파트너가 됐다"고 설명했다.
◇'고음악' 장벽 낮춘 한화클래식…10년째 한우물
한화그룹은 교향악축제 외에 '한화클래식' 공연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세계적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무대로 2013년부터 시작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시기 음악을 뜻하는 '고음악'이 한화클래식을 관통하는 테마로 꼽힌다.
기획 당시부터 한화클래식은 차별화된 전략을 고집했다. 대중성을 과시하기 위한 연주자 보다는 클래식 애호가, 마니아들이 꼭 만나고 싶어하는 연주자들, 내한 기회가 없었던 연주단체를 섭외하기 위해 힘썼다. 다만 세부적 기획은 예술의 전당 측에 맡기고 있다.
또 연주 실력은 최고 수준을 유지하되, 클래식 입문자라도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눈높이 해설을 덧붙였다. 여기에 티켓 가격 부담은 인하했다. 지난해 한화클래식의 경우 모든 좌석이 3만5000원으로 정해졌는데 공연 관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다.
10년여간 한화클래식은 바흐 음악의 대가 헬무트 릴링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고음악 해석가 리날도 알레산드리니와 그가 이끄는 콘체르토 이탈리아노,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 윌리엄 크리스티, 레자르 플로리상,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초청했다.
팬데믹 탓에 해외 아티스트 초청이 어려웠던 2020, 2021년에는 소프라노 임선혜, 바리톤 김기훈, 소프라노 서예리, 카운터테너 정민호 등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고음악 아티스트과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엔 10주년을 맞이해 ‘Unity(통합)’이라는 부제로 이탈리아 바로크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와 세계적인 만돌린 연주자 아비 아비탈이 무대에 섰다. 현재 2024년 무대를 준비 중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세계적인 거장의 내한, 공연 진입 장벽을 낮춘 저렴한 티켓가격을 더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고음악 공연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교육은 인성 함양"…청소년오케스트라 지원
클래식에 대한 김승연 회장의 애정은 교육 지원에서도 드러난다. 한화그룹은 2014년부터 한화청소년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다. 천안과 청주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지원하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다.
천안에선 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을 중심으로 현악 앙상블 교육을 하고 청주의 경우 오보에, 플롯, 클라리넷, 호른 중심의 관악 앙상블 교육을 진행한다. 정통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고 청소년들에게 정기연주회 및 재능나눔 공연 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악기 연주는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누구나 악기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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