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이사회 2.0 진화]거버넌스 체계, 이전과 어떻게 달라지나①경영진 '의사결정' 집중, 이사회는 '감독' 기능 강화
정명섭 기자공개 2024-11-13 09:00:29
[편집자주]
SK그룹은 재계에서 거버넌스 모범생으로 손꼽힌다. 10대 그룹 중 이사회 중심 경영 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했다. SK의 지배구조 개편은 다른 대기업 집단의 귀감이 됐다. 최태원 회장은 선진 지배구조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춘 총수로 평가받는다. SK그룹은 거버넌스 체계를 한 단계 더 고도화하기 위해 이사회의 관리·감독 기능을 한층 더 강화하는 '이사회 2.0' 체제를 추진한다. 재계는 사업의 글로벌화와 주주행동주의 등장이 이사회 중심 지배구조 강화를 강요받고 있어 SK그룹의 움직임은 선제 대응으로 평가된다. 더벨은 그간 SK그룹의 지배구조 현황과 향후 과제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1일 16: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이 거버넌스 체계를 한 단계 더 고도화하겠다고 예고했다. 주요 관계사의 이사회가 의사결정 중심의 역할에서 전략 방향 설정, 사후 성과평가 등의 감독 역할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고 있어 이사회 자체의 경쟁력을 키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행동주의 펀드발 경영권 분쟁 사례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으로도 분석된다.◇이사회에 '업무 감독' 강화 주문, 왜?
SK그룹은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SK 디렉터스 서밋' 행사를 열어 '이사회 2.0'을 주제로 논의했다. SK 디렉터스 서밋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그룹 최고경영진뿐 아니라 13개 관계사 사외이사 50여명이 참여하는 연례행사다.
올해 디렉터스 서밋에서 처음 언급된 이사회 2.0은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이사회의 발전·진화 방향을 의미한다. 경영진은 의사결정에 집중하고 이사회는 사전 전략방향 수립, 감독 기능 강화 같은 업무 감독 중심으로 역할을 강화하자는 게 핵심이다.
사외이사들은 구체적으로 △중장기 전략 방향 설정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대한 교차 검증(크로스 체크) △경영 활동에 대한 사후 감독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 회장도 사외이사들에게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업무 감독을 직접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사회는 기존 안건 의사 결정 중심에서 사전 전략 방향 설정과 사후 성과 평가 등으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27년 이후에 닥칠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하려면 이사회도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경영진 판단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중장기적 아젠다도 이사회가 집중해야 할 사안으로 지목됐다.
SK그룹이 이사회의 관리·감독 강화 등 사후 관리를 강조한 건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은 계열사 간 자율경영 아래 지난 10년간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수소 등으로 과감하게 사업 영토를 넓혀 재계 2위로 오를 수 있었다. 특히 대규모 투자→현금창출확대·IPO→투자금 회수·신규 투자 재원 확보는 SK그룹의 대표적인 성장방식이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주력 사업의 현금창출력이 약화되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신사업 투자 성과가 부진하면서 선순환 체계가 깨졌다. 이에 SK그룹의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10조원을 넘어섰다. 계열사별 중복·방만 투자 문제도 불거졌다.
올들어 SK그룹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비핵심 자산 매각, 사업 운영효율성 개선(O/I)에 나선 건 핵심 사업 부진과 재무부담이라는 이중고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중에서도 O/I는 손길승 회장 체제였던 2002년 말 이후 21년 만에 꺼내든 경영 화두였다. 그만큼 그룹의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나타낸다.
SK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유수 기업들도 이사회의 역할을 의사결정 보다는 관리·감독으로 재정의하고 있다"며 "이사회 2.0 추진 등을 통해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를 더욱 공고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버넌스 모범생 SK, 목표는 글로벌 수준 '이사회 경영 체계' 구축
SK그룹은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를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주사인 SK㈜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염재호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에 선임된 것이 그 시작이다. 국내 10대 그룹 중 사외이사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긴 건 SK가 처음이었다. 이사회 의장-대표이사 분리는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 권고 사항이다.
2020~2021년 재계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불면서 SK그룹의 이사회 중심 지배구조 혁신 속도는 더 빨라졌다.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분리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상장 기업으로 확대 적용됐다. 이른바 '이사회 1.0' 체제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2021년에는 처음으로 그룹 주요 계열사 이사회는 CEO에 대한 평가·보상, 임원 인사, 조직 개편을 결정했다. 이사회 경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
2022년부터는 SK 디렉터스 서밋을 6월 경영전략회의, 8월 이천포럼, 10월 CEO세미나와 함께 그룹 주요 행사로 정례화했다. 사외이사들이 거버넌스의 한 축으로서 그룹 경영 아젠다 논의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집단지성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1회 디렉터스 서밋에선 사외이사 후보군 제도 도입, 이사회 업무를 지원 포털 시스템 도입 등이 논의됐다.
작년에는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의가 회사 내부 감사기구를 직접 감독하도록 했다. 사외이사들이 경영 리스크를 사전 및 사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같은 해 디렉터스 서밋에선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모였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논의됐다.
SK그룹은 최근 신임 사외이사 워크숍,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고 있는 사외이사 간 회의 기구인 '사외이사 의장 협의체' 등도 정례화해 운영하고 있다. SK그룹의 궁극적인 목표는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을 넘어서는 선진적인 이사회 중심의 경영 체계 구축이다.
올들어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지분 매입을 통한 경영 개입으로 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 확대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SK그룹의 거버넌스 체계 고도화는 선제 대응으로 평가된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지배구조가 취약한 그룹을 상대로 많은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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