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1월 13일 07: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트라우마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파두와 이노그리드 사태를 겪은 후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집약된 '엄격함'이 심사 관행 곳곳에서 묻어난다.IPO를 담당하는 증권사 IB 절대 다수는 "확실히 심사 강도가 세졌다"는 데 이견이 없다. 예비심사를 청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철회를 제안받는 일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청구 직전부터 6~8개월 심사가 걸릴 것이니 비용 계획을 작성해 오라는 통보도 이젠 관행으로 정착됐다.
그렇다면 거래소는 완벽한 심사를 추구하는 것일까? 사실상 모든 것을 자기 통제 하에 두겠다는 것인데 그런 결론을 내릴 만큼 거래소가 전지전능한 조직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욱 인간적인 두려움, 성공과 생존에 대한 열망에 조명해보면 대략적인 실루엣을 가늠해볼 수 있다.
거래소는 꿈의 직장으로 꼽힌다. 심사당국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에 더해 훌륭한 복지 수준과 어메니티는 수많은 여의도 직장인들을 매혹시킨다. 그만큼 들어가기도 어렵다. 그래도 일단 거래소에 입성하면 자신의 근무지가 가진 특장점들을 최대한 오래 누리려는 근본적인 유인을 갖는다.
이 같은 인센티브는 고위층에게 특히 강력하게 작용한다. 상장심사부 위계는 크게 심사역, 팀장, 부장, 상무보, 상무 순서로 나뉜다. 물론 MZ 세대 심사역들은 언제든 다른 진로를 찾으러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부양 가족이 있고 안정에 무게를 두는 중역들은 쉽사리 떠나기 힘들다.
문제는 심사를 맡은 기업이 상장 후 3년 이내에 이슈가 생기면 진급길이 막힌다. 한 대형 증권사 IB는 '신라젠 사태'를 언급했다. 2016년 코스닥에 상장했지만 시세 조종과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상장 폐지 문턱까지 이르렀던 회사다. 그에 말에 의하면 이 사태가 불거진 후 신라젠 심사 담당 부장은 진급에 실패해 퇴사를 했다.
신라젠 사태가 현재와 같은 심사 기조 강화의 트리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리니 전례없는 수준으로 고삐를 옥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파두, 이노그리드 사태는 거래소가 '공개적으로' 엄격한 심사를 개시할 수 있는 탁월한 명분이 된다.
거래소의 상장 심사 트라우마는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냉철한 이성으로 내밀어야 할 평가 잣대가 뜨거운 가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누가 평가를 받으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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