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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기관 톺아보기]'재원 부족' 시달리는 예술의전당…예술과 사업 사이⑦[운영재원]특별법인 전환에도 정부지원·기부금 불충분…시설 유지에만 5년간 530억 지출

고진영 기자공개 2024-06-05 07:33:57

[편집자주]

공공극장은 공간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창조의 장이자 공연 문화의 산실이다. 국내 첫 국립국장은 1950년 부민관에서 개관했다. 이후 뚜렷한 거처 없이 피난지였던 대구 문화극장, 명동 시공관 등을 전전하다 1973년 남산 기슭에서 새로 문을 연다. 문화예술진흥법이 막 제정되면서 문화정책 기틀이 자리잡았던 때다. 그리고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설립. 1988년엔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신(新) 국립극장'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이 만들어졌다. 이제 70년의 역사를 지난 공공극장의 현재는 어떨까.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03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예술의전당은 문을 열 때부터 재원 부족에 시달려왔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공익자금을 받아 건물을 세웠는데, 매년 예산이 삭감돼 공사 내내 허덕였다. 겨우 다 짓고 났더니 그나마 있던 공익자금 지원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음악당만 봐도 개관 전에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확보할까 그 방법부터 찾았다. 하지만 막상 완공을 마치자 프로그램은 둘째치고 텅 빈 금고가 가장 고민이었다. 고생 끝에 운영비 일부로 공연비를 편성 받긴 했으나 수익사업 계정이라는 제한이 붙었다. 공연에 쓰는 비용만큼 수입을 올려야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시 예술의전당 공연부장, 공연기획자들은 광고를 영업하고 협찬을 얻느라 매일 진을 뺐다. 콘서트홀 2600석과 리사이틀홀 400석, 합쳐서 3000석 규모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국내 음악시장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거대했다. 만석은커녕 자리를 적당히 채우기도 쉽지 않았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설립 초기, 수익성에 '올인'

이러니 설립 초기 예술의전당 운영체계가 재원 확보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관 개관을 앞두고 1992년 취임한 허만일 사장은 문화예술의 순수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돈 벌기'에 전력투구하겠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자금줄이 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시기다.

실제로 예술의전당은 재원 확보를 위해 아등바등했다. 1993년 특별회원제를 만들어 개인 50만원, 단체 100만원의 연회비를 받고 야외 결혼식장 무료 제공이나 특별공연 초대 등의 혜택을 줬다. 같은 해 오페라극장 건물 임차인을 물색할 때는 기부금 1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레스토랑 '오페라컨벤션센터'와 불리한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예술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당이 상업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은 한계가 있었다. 오페라컨벤션센터는 문화예술과 무관한 예식장 영업을 해서 예술의전당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퇴거했고 특별회원제 역시 관리가 힘들어 5년 뒤 사라졌다. 정부의 지원, 그리고 대기업을 비롯한 민간 후원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절실했다.

◇'변곡점' 된 특별법인 전환

운영재원 측면에서 마일스톤이 됐다고 볼 수 있는 변곡점은 특별법인으로의 전환이다. 예술의전당은 2000년 1월 개정 공포된 '문화예술진흥법' 제23조 2항에 따라 정관 개정을 거쳐 특별법인으로 새 출발했다. 그 전까지 예술의전당은 민법 제32조에 따른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운영됐었다.

특별법인 전환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예술의전당이 법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이 됐다는 점이다. 또 과거엔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의 적용을 받아 기부금을 모집할 수 없었지만 문예진흥법상 전문예술법인이 되면서 기부금을 공개 모집할 수 있게 됐고 기부금에 세금혜택이 주어졌다.


복잡했던 재산권 문제 역시 해결됐다. 전당은 원래 운영주체와 부지소유주, 건축주가 전부 다른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운영권은 예술의전당 법인에 있고 부지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유였으며 건축주는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갈렸다.

예술의전당 건립본부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별도의 독립기구로 설치됐는데, 세금 문제가 있다 보니 건립을 위한 방송공사의 기부금은 건립본부가 아닌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받아 부지를 구입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운영과 소유가 분리된 구조는 예술자료관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관으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특별법인이 됨으로써 예술의전당은 건물, 토지를 국가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무상으로 양여받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만성적인 수지차 적자, 국고 지원 '역부족'

재정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기틀은 일단 마련된 셈이지만 여전히 살림은 빠듯하다. 공연장 수입이 기업 기부금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이나, 공적 지원으로 운영되는 유럽과 달리 예술의전당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술의전당이 '대관의전당'이라는 비아냥을 종종 들어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자력으로 흑자를 내기 힘든 마당에 외부 지원까지 적으니 대관사업을 줄이기 어렵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사업성을 외면하고 마냥 예술성만 추구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실제로 예술의전당은 해외 다른 공공극장들과 비교해 지나치게 높은 재정자립도를 요구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당이 국고에서 매년 수혈받는 규모는 보통 전체 수입의 30%대 수준이다. 지난해 52%로 뛰긴 했지만 세금 납부를 위한 일시적 증가였고 올해 예산안에서는 36.9%로 다시 줄었다. 일본 신국립국장이 연간 예산의 약 70%를 국고에서 지원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2017년엔 전당이 수지차보전 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수치차보전 기관이란 말 그대로 수입과 지출의 차이를 지원받는 곳을 말한다. 그 해 예산을 잡을 때 지출계획보다 예상수입이 모자란 만큼을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책정해 주고 있다. 이 때 보조금을 포함한 예산 편성은 예술의전당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재정부와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수지차보전 기관이라고 해서 적자를 피해갈 수는 없다. 예산 계획과 달리 결산 수입이 지출보다 모자라서 발생하는 마이너스가 메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은 수지차보전 기관이 된 이후 2022년까지 매년 수지차 적자를 냈다. 흑자를 낸 것은 세금 이슈로 지원금이 반짝 늘었던 지난해가 유일하다.

설상가상 예술의전당은 시설이 낡아가면서 매년 시설 유지와 개보수에만 100억원 안팎을 쓰고 있다. 정부 보조금의 절반이 공간 유지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총 531억원을 공간유지비로 지출했다.

사정이 이런 만큼 예술의전당 이사회 내부에선 기재부나 국회를 상대로 지원금 증액에 대한 설득을 계속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져왔다. 지원해주는 예산은 적은데 요구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계 관계자는 "전당은 예산 편성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기재부와 모두 논의를 해야하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둘이나 된다"며 "예산을 짤 때 세세한 지시를 하지는 않지만 공공성을 확보하라는 등의 관여를 하는데, 사실 예술의전당 입장에선 '지원은 하되 참견하지 않는' 태도를 가장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기부금 규모는

민간 후원은 어떨까. 대기업 기부를 포함해도 연간 10억원 안팎에 그친다. 주로 예술의전당 후원회를 통해 이뤄지며 작년 기부금은 12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8억2000만원)보다 늘긴 했으나 넉넉하다고 하긴 힘들다. 대규모 기업 후원의 경우 ‘네이밍 스폰서’(Naming Sponsor)'를 통해 마케팅 효과를 낼 수 있는 인프라 시설에 치중되는 영향도 있다.


대표적으로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있는 IBK챔버홀은 기업은행이 건설비 45억원을 지원해준 대신 20년간 명명권(Naming Rights)을 가져갔다. 600석 규모로 2011년 개관한 연주홀이다. 또 전당 오페라하우스 CJ토월극장은 2013년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270억원 중 150억원을 CJ그룹이 냈고 이때부터 'CJ' 이름이 붙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전당은 공공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고민을 항상 안고 있는데, 관련부처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부분들, 시설 노후 등 애로사항 지원을 다방면으로 요청하고 있다"며 "인식의 전환을 통해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기업 후원도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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