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6월 18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샘 멘데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로 데뷔했다. 그의 최대 역작이다. 2000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으니 첫 영화라 믿기 힘들만큼 잘됐다. 상업적으로도 꽤 쏠쏠했는데 1500만달러를 들여 3억5000만달러를 벌었다.이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때때로 세상은 너무 아름다움이 넘쳐서, 난 견딜 수가 없어. 꼭 가슴이 미어질 것처럼. (Sometimes there's so much beauty in the world, I feel like I can't take it, and my heart is just going to cave in.)” 이런 철학적인 척하는 언어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대마초 딜러 리키. 주인공 레스터의 옆집으로 이사 온 부부의 아들이다. 그는 공터에서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려 공중에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다시 일어섰다가 주저앉고, 또 낙엽과 함께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말한다. 아니 웬 호들갑인지.
영화는 실존주의적 위기, 아름다움에 대해 성찰을 유도하려 하지만 인물들의 고통과 결핍은 과장돼 있으며 어딘가 자기도취적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마치 드라마퀸 원 투 쓰리 등등이 모여서 극적인 불행을 외치는 것만 같다.
아무튼 영화는 평단에서 대단히 환영 받았다. 비닐봉지 씬은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작가와 감독이 스스로의 세계를 거리낌 없이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예술이란 모두의 공감을 사기 어려운 법이니 개인적 불호와 별개로 수작일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런데 지난해 멘데스 감독은 그의 히트작인 <아메리칸 뷰티>같은 영화들이 지금이라면 극장에 걸리지 못했을 것 같다고 씁쓸히 말했다. 최근 영화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샘 멘데스의 다소 패배주의적 인정이 자꾸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들은 갈수록 중박 작품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1000만 영화가 나와도 300만~700만명의 허리들은 씨가 말랐다는 얘기다. 지난주 주간 박스오피스를 보면 1위 <인사이드 아웃 2>를 일주일간 200만명 넘게 봤지만 4위는 고작 6만명에 그쳤다. 2019년만 해도 이맘때 4위였던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을 66만명이나 관람했는데 '되는 영화만 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얼마 전 만난 배급사 관계자는 "이제 100만명 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데다 입소문이 한 번 잘못나면 치명적"이라며 "싫어할 만한 부분은 다 빼고 만드느라 힘들다"고 말했다.
불호 요소를 모조리 없앤다니. 맨데스의 영화가 대체로 찝찝한 불행 자랑회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아쉬운 일이다. 레스터의 환상 속 장미꽃잎 위에 누워있는 안젤라. 영화사의 아이콘적 장면을 극장에서 볼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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