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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에서 자유를 [thebell desk]

조은아 금융부 차장공개 2024-10-22 12:51:03

이 기사는 2024년 10월 18일 07: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보통 찬바람이 불면 인사철이라지만 올해 금융권에선 유독 인사철이 빨리 왔다.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가 이르면 9월 초, 늦어도 9월 말부터 계열사 대표이사 선임을 위한 절차를 개시했다. 대추위(KB), 자경위(신한), 임추위(하나), 자추위(우리) 등 이름은 달라도 역할은 대동소이하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도 않은 것 같던 시기, 이르게 인사 절차가 시작된 이유는 단순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2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모범관행 원칙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CEO 선임 절차를 최소 임기 만료 3개월 전에 개시해달라는 게 핵심적인 내용이다. 지주 회장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지 말고 적어도 한 분기 동안 합리적인 평가를 거쳐달라는 주문이다.

물론 취지엔 빈틈이 없다. 차기 CEO를 뽑는 작업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또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 대입하고 보면 다소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후보들을 평가하는 시간을 늘려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금융권 CEO들의 임기는 짧은 편이다. 금융지주 회장에겐 그래도 3년의 시간이 주어지지만 은행장들은 대부분 처음엔 2년을 받지만 이후엔 1년에 한번 성적표를 받는다.

처음에만 좀 숨을 돌리고 다음부턴 할 만하다 싶으면 임기 만료가 다가온다. 이젠 그 1년 중에서도 3개월은 승계 국면으로 보내야 한다. 마음껏 재량을 펼치기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조기 레임덕만 부르고 내부 조직원들의 피로도만 높아지는 건 아닐까.

인사철이 다가오면 인사 대상자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사린다. 그 전까진 단기 성과라도 내기 위해 열심히 '숫자 관리'에라도 공을 들였다지만 '오늘부터 인사 절차 개시합니다'라는 선언이 나와버리면 그마저도 손을 놓을 가능성이 높다.

인사철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얘기는 구문이 된 지 오래다. 과거에는 한해 성과를 뽐내기도 했지만 요즘엔 '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현명한 선택은 9개월 내내 단기 성과에 치중하고 나머지 3개월은 아예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될 수 있다. 기업에 좋을 리가.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그만큼 신중하게 이뤄지느냐, 옳은 선택을 하느냐 역시 짚어야 할 문제다. 대체로 시간이 많고 급하지 않으면 늘어지기 마련이다. 차라리 단기간에 집중력 있게 고르는 게 나을 수 있다. 인사 프로세스를 더 촘촘하게 마련해서 해결할 일을 시간을 늘려서 해결한다는 건데 본질에서 엇나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사'에서 가장 오래 벗어나있는 게 가장 좋은 '인사'를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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