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저작권, 균형의 해법]윤곽 드러난 정책, 기업들 '뒷짐' 실효성 '글쎄'면책 규정·학습 데이터 공개 사안 다뤄…시장 현실성 확보 과제로
이지혜 기자공개 2025-01-02 07:42:42
[편집자주]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비전문가도 생성형AI만 있으면 글, 그림, 음악, 영상까지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는 단계부터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창작자의 의지가 꺾일 수 있다. AI시대의 저작권 문제는 법적 논쟁을 넘어 창작과 기술의 진보를 좌우할 핵심사안이다. 저작권 제도가 생성형AI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27일 07: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공지능(AI) 저작권 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올해 초 발족한 'AI-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워킹그룹)'의 주요 쟁점 논의 사항을 최근 공개했다. 워킹그룹이 약 1년에 걸쳐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 면책 규정 도입, AI학습 데이터 공개 의무화 등 주요 쟁점을 협의한 내용을 담았다.이를 둘러싼 실효성 우려는 여전하다. 정책 방향 자체가 AI학습 데이터의 상업적 이용 제한, 영업비밀 보호 문제 등 현장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국내 주요 AI 개발사들의 워킹그룹 참여도 저조했다. 정책과 현장의 간극을 메우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킹그룹 논의 '막바지', 정책 실효성 의문 '솔솔'
27일 업계에 따르면 문체부는 AI-저작권 제도개선 방안을 담은 안내서를 내년 초 발표할 예정이다. AI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저작권과 충돌 사례가 크게 늘어날 조짐을 보이자 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마련하기로 한 안내서다. 이를 위해 올해 2월 워킹그룹을 발족하고 14번에 걸쳐 회의를 가졌다.
문체부는 안내서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내용을 최근 공개했다. 이달 13일 한국저작권위원회 서울사무소에서 전체회의를 가진 뒤 내놓은 자료를 통해서다. 이에 따르면 안내서에 담을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AI 학습데이터 확보를 위한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 면책 규정 도입이다. TDM은 AI학습 등을 위해 여러 정보에서 특정 내용을 뽑아 의미를 분석하고 고품질의 정보를 도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저작권 보유자가 AI학습에 대한 거부 의사를 보이면 비영리적 목적의 TDM에 한해서만 면책 조항이 적용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워킹그룹은 AI학습에 활용되는 데이터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고려해 저작권법뿐 아니라 AI기본법 등 관련 법제를 고려해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밖에 저작권법상 실질적 유사성 기준에 따라 AI산출물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고 인간의 기여가 있는 부분에 한정해서 저작물성을 인정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그 결과들이 안내문에 담길 예정이다.
정작 업계에선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가장 큰 쟁점은 TDM 면책 규정의 실효성 문제다. 생성형AI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주체는 대부분 상업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대기업들이다. 비상업적 목적에 한정해 TDM 면책 규정을 적용한다면 제도의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학습데이터 공개 정책도 마찬가지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학습데이터 공개가 핵심 기술과 영업 전략의 노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기업과 해외기업 간 규제 형평성 문제도 심각한 사안으로 꼽힌다.
AI업계 관계자는 “AI-저작권 정책 방향 안내서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 기업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국기업과 달리 국내 AI개발사만 저작권 침해 논란과 영업비밀 유출 위험에 노출돼 발목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워킹그룹 학계·법조계 쏠림...생성형AI 선도기업 참여 외면 영향은
문제는 규제 형평성 목소리를 내줬을만한 이해당사자들의 워킹그룹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다. 문체부가 구성한 제2기 AI-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에서 산업계 대표 위원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현장의 실질적인 우려사항이 정책 논의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제2기 워킹그룹의 전체 구성원 16명 중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가 9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현장 실무진인 저작권 권리자, AI 사업자, 산업기술 전문가는 총 7명에 그친다. 세부적으로 △학계 5명 △법조계 4명 △저작권 권리자 대표 3명 △AI 사업자 3명 △산업기술 전문가 1명으로 구성됐다. 산업계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워킹그룹 참여 인력을 보낸 기업들이 국내 생성형AI 개발 현장의 최전선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곳들이다. 올해 워킹그룹에는 김경훈 카카오 AI정책지원이사, 배지훈 KT IPR법무팀 팀장, 이문기 코난테크놀로지 이사가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LG전자 AI연구소와 솔트룩스 관계자 2명만 기업 대표로 참여했다.
현재 국내 AI개발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평가받는 곳은 네이버와 SK텔레콤 등이다. 네이버는 국내 최초로 초대규모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출시했고 SK텔레콤은 '에이닷'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한편 퍼플렉시티 등 글로벌 기업과의 AI 동맹을 통해 서비스 혁신을 꾀하고 있다. 핵심 기업의 불참은 정책 논의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이면에는 기업들의 외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AI개발사에게 문체부가 참여를 요청했지만 기업이 고사했다”며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워킹그룹 회의가 현업 실무진에게 상당한 시간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 부처와 협력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과기부가 주도하는 초거대AI추진협의회에 참여하는 민간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워킹그룹 논의에 반영하고 있다"며 "별도로 주요 AI 개발사와 직접 소통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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