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상환 경험 투자자, 불완전판매 인정 가능할까 [손실위기 선진국금리 DLS]10명중 4명 유사상품 투자 경험…당국 "배상비율 산정시 투자 경험 감안할 것"
최필우 기자공개 2019-10-25 08:37:14
이 기사는 2019년 10월 23일 15: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선진국금리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이 순차적으로 확정되면서 분쟁조정위원회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파생결합펀드(DLF) 판매사들이 뭇매를 맞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전례 없는 배상 비율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유사한 상품에 투자해 수차례 수익을 거둔 투자자들에게도 높은 배상 비율이 산정될 경우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유사 투자경험자 비중 41.9%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논란이 된 선진국금리 DLF에 가입한 개인투자자 중 유사 파생상품에 투자해본 경험(1~5회)이 있는 비중은 41.9%다. 건수와 금액은 각각 1336억원, 2749억원이다. 투자 경험이 전무한 개인투자자 비중은 21.8%다. 건수와 금액은 830건, 1431억원으로 집계됐다. 근래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 중 유사 투자 경험이 있었던 투자자가 더 많았던 셈이다.
유사상품 범위를 파생상품이 아닌 사실상 동일한 구조를 취한 선진국금리 DLF로 제한해도 재투자 경험이 있는 비중이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KEB하나은행이 CMS(Constant Maturity Swap)금리 연계 DLF를 리테일 고객에게 처음 선보인 건 2015년이다. 당초 기관투자가 전용 상품이었으나 개인 고객용으로 탈바꿈하면서 최근 3~4년간 인기를 끌었다. 이 기간 수차례에 걸쳐 수익을 내다가 이번에 손실을 입은 투자자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또 조기상환 평가일이 3개월로 짧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에 선진국 금리 급락으로 조기상환이 지연되고 손실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투자 3개월 후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이어져 왔다. 최대 연 4회 투자해 시중금리 대비 높은 수익을 수취한 고객 수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우리은행도 CMS금리 연계 상품을 선보여 수차례 조기상환과 재판매를 반복했고, 이후 만기가 4~6개월로 짧은 독일 국채금리 연계 DLF를 라인업에 추가하면서 손실 규모가 커진 것이다.
감독 당국은 유사한 상품에 투자해 조기상환을 경험했더라도 이번에 손실을 입었을 경우 불완전판매 피해를 입은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모든 투자자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같은 상품으로 수차례 수익을 냈다 해도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한채 조기상환과 재투자를 반복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당국은 투자 경험을 배상 비율 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험이 많은 투자자일수록 투자 경험이 전무했던 투자자에 비해 낮은 배상 비율이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투자 경험이 상품 이해도와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또 명백하게 상품을 이해한 정황이 충분하면 불완전판매 사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2국 관계자는 "투자자가 같은 상품에 수차례 투자해 수익을 낸 경험이 있다고 해도 판매사가 상품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다면 불완전판매로 인정될 수 있다"면서도 "유사 상품 투자 경험이 많은 투자자일수록 무경험자에 비해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해석이 가능한 만큼 배상 비율이 낮아지는 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험자 배상 확대시 '파생·전문투자자' 시장 위축 전망
전례없는 배상 비율이 나올 경우 파생상품 발행과 판매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2004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 때는 최대 70%까지 배상 비율이 산정되기도 했다. 이번 선진국금리 DLF 투자자에 대한 배상 비율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 유사상품 투자 경험이 풍부한 투자자도 상당히 높은 비율의 배상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때는 투자자가 아닌 발행사와 판매사가 상품 공급을 꺼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달 대상자가 확대되는 개인전문투자자 시장도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투자자로 등록하면 파생상품을 비롯한 고위험 상품 가입 절차가 간소화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투자자가 지게 된다. 하지만 판매사에 대한 책임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개인투자자들이 전문투자자 신청을 꺼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만일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불편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논리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감독 당국이 이번 배상 비율 산정을 불완전판매 근절을 위한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국은 그동안 투자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가 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불완전판매 정황이 명백할 때 판매사를 규제해 왔다. 하지만 이같은 관행 속에서는 불완전판매 근절이 어렵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고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모든 투자자가 상품을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닐 것"이라며 "가입자별 투자 경험을 고려해 배상비율이 형평성에 맞게 산정돼야 업계가 불필요하게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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