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풍향계]스팩 '포화 상태' 경고등, IB들 "추가 상장 힘들다"잔존 스팩만 71개…주요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 대형 스팩에 여유자금 몰아 넣기도
남준우 기자공개 2023-06-13 07:15:21
[편집자주]
증권사 IB(investment banker)는 기업의 자금조달 파트너로 부채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을 이끌어가고 있다. 더불어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워낙 비밀리에 딜들이 진행되기에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기도 한다. 더벨은 전문가 집단인 IB들의 주 관심사와 현안, 그리고 고민 등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23년 06월 09일 14: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증시에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이 '포화 상태'다. 증시에 입성해서 거래되고 있는 잔존 스팩만 무려 71개다. 하우스별 IB간의 합병 대상 찾기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앞단에서의 힘겨운 싸움은 수요예측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스팩의 주요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들은 지갑을 닫았다. 공모주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면서 스팩 이외의 선택지로 눈을 돌렸다. 최근 몇년 동안 등장했던 대형 스팩에 스팩 할당 금액을 쏟은 나머지 추가 투자 여력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작년에 역대 최대치인 45개 스팩 증시 입성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일 기준으로 올해 국내 증시에 입성한 스팩은 총 11개다. 미래에셋증권이 3개로 가장 많은 스팩을 올렸다. 국내에서 스팩 합병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증권사인 하나증권과 NH투자증권은 각각 2개와 1개를 증시에 입성시켰다.
이외에도 10개의 스팩이 예비심사 승인을 받고 증시 입성을 대기 중이다. 9일 기준으로 예비심사 청구서를 접수한 곳도 한국제12호스팩, 유안타제11호스팩, 한화플러스제4호스팩, KB제26호스팩, 대신밸런스제15호·16호스팩 등 총 6개다.
잔존 스팩 중 일부는 합병에 성공했다. 9일 기준으로 올해 스팩 합병에 성공한 기업은 총 10곳이다. 벨로크, 메쎄이상, 라이콤, 코스텍시스 등은 존속 합병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팸텍, 슈어소프트테크, 셀바이오휴먼텍, 엑스게이트, 라온텍, 화인써키트 등은 소멸 합병 방식을 선택했다.
올해도 증권사들의 스팩 활동이 활발하지만 작년 만큼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증시 악화에 직상장의 대체재로 부상받던 작년에는 총 45개의 스팩이 증시에 입성했다. 아직 상반기 시점이기는 하지만 작년과 비교했을 때 스팩의 상장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다.
IB 업계에서는 이미 스팩이 시장에서 포화 상태라는 점을 언급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일 기준으로 증시에 올라와 있는 잔존 스팩은 총 71개다. 작년에 2015년 이후 최대치로 스팩이 상장한 탓에 잔존 스팩이 급증했다. 이에 IB들 간의 합병 대상 물색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 보이면서 스팩을 찾는 수요는 이전보다 줄었는데 너무 많은 스팩이 올라와 있다보니 비상장법인을 물색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최전선에서 IB들의 힘겨운 싸움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으로도 이어지는 추세다. IB 업계에서는 최근 스팩 투자를 꺼리는 기관투자자들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신규 스팩 상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다.
실례로 지난 4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일정을 치뤘던 키움제8호스팩이나 유안타제11호스팩 드은 수요 부진에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키움제8호스팩은 공모액을 1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줄인 뒤에야 증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유안타증권은 작년 11월에 이어 두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한 뒤 아직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스팩의 주요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들의 분위기가 작년과는 또 다르다는 평가다. 작년 하반기에는 더블유씨피(WCP)의 부진과 금리 인상 등이 자산운용사가 운영하는 공모주 펀드에 악영향을 미쳤다.
공모가 밑으로 팔 수 없는 상황에서 엑시트에 실패했다. 여기에 금리까지 오르는 악재가 겹쳤다. 일반인들이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을 빼기 위해 환매를 물밀듯이 신청했다. 스팩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 셈이다. 최근에는 포화 상태인 점을 고려해 굳이 스팩에 추가로 자금을 넣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형 스팩의 등장을 거론하기도 했다. 시가총액 400억원 이상의 스팩이 여럿 등장한 상황에서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스팩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을 모두 소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주요 기관투자자인 자산운용사들의 스탠스가 굉장히 보수적인 상황"이라며 "한국거래소가 매년 하반기쯤 상장 통계를 검토하고 증권사별로 50억~60억원 규모의 소형 스팩을 할당할 때도 있는데 이를 제외하면 추가 상장은 IB들 사이에서 힘들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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