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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은 지금]철도 '수주 잭팟' 올렸지만…문제는 국내 발주가격①'팔수록 손해' 저가수주 늪 벗어난 현대로템

허인혜 기자공개 2023-07-28 07:19:17

[편집자주]

현대로템은 호황과 불황의 극단을 모두 겪어본 기업이다. 수주잔고를 높게 쌓으며 웃었지만 이후 저가수주 경쟁으로 오랜 실적저하를 겪을 만큼 처지가 급변했다. 저가수주를 따내도, 경쟁에서 밀려도 좋지 못한 패였다. 단조로운 포트폴리오 탓에 다른 수익원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랬던 현대로템이 지난해부터 시작된 방산 수주 잭팟에 이어 전통 강자인 철도 영역까지 다시 수주잔고를 두둑히 적재하고 있다. 현대로템의 살을 깎았던 저가수주 경쟁은 버렸고 포트폴리오도 다변화됐다. '지금' 현대로템의 달라진 수주 전략을 더벨이 들여다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26일 09: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동 큰손'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점찍은 기업들은 늘 화제다. 악수 한 번에 주가를 껑충 끌어올리는 건 일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현대로템이 그랬다. 하루 만에 주가가 5.45% 뛰었는데 빈 살만 왕세자가 현대로템과 철도 부문 업무협약(MOU)을 맺은 덕이다. 추진하는 사업은 모두 세 가지. 고속철 구매 사업과 철도차량 제조 공장 설립, 사우디의 디젤기관 열차를 수소 기관차로 대체하는 사업이다. 구체화된 고속철 구매 사업 규모만 2조5000억원에 달했다.

현대로템은 요즘들어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더 이름값을 높이고 있지만, 빈 살만의 선택에서 알 수 있듯 오랜 기간 철도 사업체로서의 정체성이 더 확고했던 기업이다. 방산 승전보를 울리는 사이 철도 부문에서도 수주 잭팟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현대로템의 과거와 최근까지의 수주 지표를 돌아보려면 레일 부문을 톺아보는 게 필요하다.

현대로템의 과거와 현재 수주전 전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3년 현대로템의 수주 잭팟은 10년 전과 두 가지가 달라졌다. 철도 부문의 저가수주 경쟁은 버렸고 철도에 플랜트와 방산을 더해 포트폴리오는 다변화됐다.
현대로템이 납품할 호주 퀸즐랜드 전동차 조감도. 사진=현대로템

◇철도 수주전, 팔고 손해보느냐 못 파냐의 딜레마

현대로템은 10년 전에도 레일 부문의 수주 계약을 줄지어 비축했다. 수주 잔고가 곧 제조사의 수익성 지표와 연결되는 만큼 현대로템의 꽃길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쌓아둔 저가수주 잔고는 현대로템의 실적을 오래 끌어내리는 걸림돌이 됐다. 철도 부문의 저가수주 경쟁도 날로 치열해졌지만 레일 의존도가 높은 현대로템으로서는 다른 길을 찾기 어려웠다.

저가수주 악몽은 데자뷰다. 현대로템은 2005년에도 저가수주 경쟁 등의 여파로 수익성이 크게 저하돼 초고강도라 불릴 만큼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현대로템만의 아픔은 아니어서 글로벌 철도 기업들이 적자에 몸살을 앓았던 시기다. 인프라 사업에 뛰어든 중국 등이 워낙 싼값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 현대로템은 철도 부문의 저가수주를 털어내는 한편 저가수주 경쟁에서 마냥 질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저가수주가 쌓이면 매출은 느는데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지만 저가수주를 하지 않으면 신규 고객 유치가 요원한 진퇴양난이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실적이 고꾸라졌다. 연간 매출과 실적 흐름, 증권가 리포트 등을 참고하면 여파가 2020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4년과 2015년 영업손실을 봤고 2018년과 2019년에도 각각 1961억원, 279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팔수록 손해, 알고도 참전한 이유

현대로템은 수주 잔고를 확대할 때만해도 저가수주라는 해석을 경계하고 전략에 따랐다고 해명했지만 그 전략의 중심이 고객 유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일부 저가수주를 인정한 셈이다. 저가공세에 수주를 포기하면 포기하는 대로 또 다른 손해였다.

현대로템도 저가수주 경쟁이 제 살을 깎는 전략이라는 점을 몰랐을리 없다. 하지만 저가수주가 아니고서는 인프라 경쟁에서 도저히 중국을 이길 수 없었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철도 길이만 2010년대 이미 1만6000km, 전세계의 60% 수준이었다. 2005년에야 고속철도 기술을 도입했지만 2010년대에는 경험이 쌓였고 다량생산도 가능했다. 가격 면에서는 대항마가 없었다.
현대로템이 올해 사업 수주에 성공한 EMU-320 고속열차. 1량당 가격이 52억원이다. 사진=코레일

한 예로 201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화력발전소 수주전에서 후보로 꼽히지 않았던 중국 기업이 깜짝 수주를 받았는데, 그 비결이 두 번째로 낮은 값을 낸 기업보다 무려 3억5000만달러나 싼 가격을 냈기 때문이었다. 2015년에는 현대로템이 해외 수주전에서 중국기업과 수십차례 맞붙었는데 상반기까지 단 한건의 신규수주도 해오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중국 기업들의 입찰 금액은 현대로템 대비 10~20%가 저렴했다.

국내에서도 경쟁사가 많았다. 2010년 이후 중소 규모 철도부품사가 철도차량 제작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업체 간 출혈경쟁이 벌어졌다.

◇현대로템, 저가 수주 지양…수주 잔고 쌓았지만

저가수주 경쟁에 실적 저하가 반복되자 현대로템은 과감하게 적자를 유발할 만한 수주에는 뛰어들지 않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본격화된 건 이용배 대표가 취임한 2020년 이후다. 사실 이미 글로벌 메이저 업체였던 지멘스, 알스톰 등은 이미 2010년대부터 중국이 낀 수주전에는 참전을 피해왔다. 해봤자 출혈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럼에도 현대로템은 꽤 오랜 기간 중국과 맞붙었는데 글로벌 점유율이 메이저 업체들에게는 못미쳐 신흥시장 개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인도와 홍콩, 그리스, 브라질, 이란, 아일랜드, 캐나다, 터키와 방글라데시, 대만 등은 물론 경쟁자 중국에서도 수주에 성공했다.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이후 20년간 해외 수주전에 참전해온 만큼 이제는 저가경쟁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만큼 인지도가 쌓였다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 기업들이 여럿 문을 열며 해외 시장에서 점유율을 눈에 띄게 높이지는 못했지만 무인운전 차량 등 현대로템이 특화된 시장에서는 글로벌 톱티어 반열에 들었다.

1분기 말 현대로템의 철도 부문 수주잔고는 8조2800억원이다. 6월 30일 호주와 체결한 퀸즐랜드 전동차 공급 사업의 비중이 컸다. 1조2164억원 규모로 현대로템이 차량 설계와 자재구매, 현지생산 교육과 감독 등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현지 퀸즐랜드 남동부의 토반리에 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4월 수서발 고속열차(SRT) SR과 고속열차 관련 수주 계약을 맺었다. 규모는 1조860억원 수준으로 현대로템이 고속열차 제작과 보수사업을 진두지휘한다. 호주, SR과 계약을 맺기 전까지 단일 계약고가 가장 컸던 수주가 9293억원 규모의 이란 디젤 전동차 공급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해 사이 대형 계약을 연달아 체결한 셈이다.

수주 잔고는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철도 부문의 수익성 개선은 과제다. 지난해 철도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1%(매출 1조7788억원, 영업이익 207억원)를 기록했다. 당시 철도 부문은 약 7조5000억원의 수주 잔고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수익성은 여전히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국내 철도차량 시장의 발주 가격이 워낙 낮게 형성된 영향이다. 전동차와 비교해 단가가 높은 고속철조차 마진이 낮다. 때문에 현대로템 등 철도차량 제작업체는 국내에서 수주 잔고가 늘어도 수익을 많이 내기 어렵다. 지난해 현대로템 철도 부문의 매출 비중은 56.2%로, 철도 부문의 영업이익 비중은 14%에 그쳤다. 철도 부문의 저수익 구조를 볼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도시장의 경우 중소업체가 참여하면서 경쟁 구조가 도입됐지만, 마진이 워낙 낮은 탓에 업체들이 수주를 통해 선순한 구조를 만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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