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1월 03일 13: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둘다 기재부 OB(올드보이) 출신 정통 금융 관료다. 함께 경제 정책서를 집필한 인연도 있다. 현재는 제각각 민간 금융권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회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기 전까지의 이력이 거의 일치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두 회장은 현업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 이때 함께 뜻을 모아 몇몇 기재부 출신 인사들과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임종룡, 이석준 회장의 지향점이나 경제, 금융산업에 대한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금융당국 인사는 "임종룡, 이석준 회장은 둘다 리더로서의 인품이 훌륭한 이들이며 스타일이 비슷하고 서로 매우 친하다"면서 "임종룡 회장이 디테일까지 챙겨가며 일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석준 회장은 큰 틀에서 굵직한 것 위주로 일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 농협금융 CEO 선임까지 공통된 이력들

임 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1959년생, 올해로 64세다. 두 인사 모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으며 입문 시기는 임 회장이 이 회장보다 두 해 빠르다. 임 회장과 이 회장은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에서 시작해 기재부 국, 실장을 거쳤다.

임 회장은 기재부 기획조정실장을, 이 회장은 기재부 예산실 실장을 각각 맡았으며 임 회장은 2010년 기재부 제1차관에, 이 회장은 2013년 기재부 제2차관에 각각 올랐다. 각각 장관급인 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 분할 전) 실장, 국무조정실 실장을 역임한 것도 공통분모다.

임 회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건 2013년이다. 이후 2015년 금융위원장에 임명됐는데 임 회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있던 2016년에 이 회장은 국무조정실 실장을 맡아 국무회의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21년 당시 윤석열 대선캠프 총괄로 영입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을 맡기도 했으며 이후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이 회장이 대선캠프에 있었던 이력을 제외하면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오르기까지의 루트가 거의 일치한다.

임 회장은 이후 금융위원장에 오른 후 또 한번 민간금융지주인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아 관료출신 경제통에 이어 민간 금융통으로의 입지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둘의 이력이 거의 같다는 점에서 이석준 회장의 향후 행보도 점쳐볼 여지가 있다.


◇ 그림자규제 개혁·부의소득세 경제정책서 공동 집필

이들의 가치관 또는 금융사 경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임 회장과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1년 우리나라 경제정책에 대한 제언으로서 '경제정책 어젠다 2022' 책을 공저했다. 당시 임 회장은 법무법인 고문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특임교수로 있었고 이 회장은 저술 시기상 대선 캠프에 영입되기 전일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책 어젠다 2022'는 임종룡, 이석준 회장 외에도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김낙회 전 관세청장, 최상목 현 대통령비서실 경제주석이 함께 썼다. 책은 총 5개의 큰 챕터로 구성돼있으며 굵직한 국가 경제정책의 현안과 기업 지배구조 혁신까지 다루고 있다.

'새로운 경제 시스템 구축을 기대하며'란 서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이석준 회장이 '평등, 부의 소득세제와 포용적 경제' 챕터를, 임종룡 회장은 '자유, 규제 개혁과 자유로운 경제' 부분을 집필했다.

임종룡 회장은 책에서 명시적이고 투명하지 않은 그림자규제를 지적하면서 대부업 이자율 규제를 비롯해 금융사 금리인하 요구, 배당 제한, 카드사 수수료 규제 등을 불투명한 가격 규제의 사례로 꼽기도 했다.

'공정, 기업지배구조 혁신과 공정한 경제' 챕터를 쓴 건 최상목 경제수석이다. 책을 쓸 당시 최 수석은 농협대학교 총장직을 맡고 있었다. 농협대학교는 농협중앙회장이 이사장을 맡고있는 농협학원 산하의 대학이다.

우리금융, 농협금융의 경영스타일 혹은 방향 역시 각 지주의 최고 수장인 이들의 이력을 종합할 때 타 은행 금융지주사들과는 뭔가 다를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당국과 의견 조율에 강점을 두고 금융 정책 혹은 규제에 영리한 대처를 해갈 확률이 높다. 일견 민간 구원투수 역할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디테일에 강한 임 회장 vs 선 굵은 이 회장

금융 관료 시절 이 둘은 모두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가진 인사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위 출신 인사들은 임종룡, 이석준 두 회장 모두 대화 방식이나 말투가 부드럽고 후배들에게 온건한 스타일로 평하고 있다. 임 회장은 특히 평소 온화한 성격과 달리 업무에 있어서 특정 주제가 옳은 방향이라는 판단이 서면 엄청난 추진력으로 일을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다만 두 인사의 업무스타일은 차이가 있다. 임 회장은 한마디로 디테일에 강하다. 작은 일과 큰 일 모두 직접 챙기며 끌어나가는 것이 임 회장의 방식이다. 그에 비해 이 회장은 큰 것을 정하고 작은 일은 부하직원들에게 위임하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한 당국 인사는 "임종룡 회장은 큰 방향을 정하는 것도 잘하지만 페이퍼의 워딩 하나하나 직접 의미를 담아 결정하는 스타일이며 마음에 들때까지 다듬어 본인 손으로 마무리짓는 식"이라며 "능소능대란 단어가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석준 회장은 선이 굵다는 표현으로 회자된다. 인격이나 성품에 있어서는 임 회장과 비슷한 스타일로 알려졌으나 보다 큰 사안을 위주로 끌어가면서 세부적인 것은 위임하는 것이 이석준 회장의 방식이다.

이석준 회장은 올해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오르면서 민간 금융인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앞으로 농협금융그룹에서 이 회장의 경영 행보는 우리금융과 농협금융을 구분짓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