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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만 1시간' 고난도 상품판매에 시중은행 땀 '뻘뻘' [PB센터 풍향계]신한·우리·하나은행 고난도 상품판매 전 과정 녹취…"사모펀드·파생상품 영업 사실상 불가"

이돈섭 기자공개 2021-03-04 13:12:08

이 기사는 2021년 03월 02일 10:19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모펀드 가입하는 데 1시간 이상은 기본이에요. 상품 2개 가입하면 2시간인 거죠. 65세 이상 고객분들은 가입하다가 식은 땀을 흘릴 정도입니다. 지금의 녹취 강화 제도가 과연 지속가능한 제도인지, 땜질식 처방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고난도 상품판매' 녹취 작업에 시중은행이 끙끙 앓고 있다. 불완전판매를 막고 책임소지를 피하기 위해 올해부터 고난도 상품판매 녹취 범위를 넓혔는데, 영업점에 고객 불평이 쏟아지고 직원 업무도 포화상태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이 올해 초부터 고난도 상품판매 전 과정을 녹취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 투자자와 부적합투자자 등만을 대상으로 녹취를 했던 기존 움직임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이다.

고난도 상품은 최대 손실가능 금액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금융상품이다. 파생결합증권과 파생상품, 손익구조 파악이 어려운 펀드 등이 포함된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등은 이달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일에 맞춰 녹취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부 시중은행들이 고난도 상품 판매 관련 녹취 범위를 확대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이달 25일부터 시작되는 금소법 영향이 있다. 금소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금융상품 가입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을 받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경우, 금융회사가 스스로 자기에게 고의적 과실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관련 분쟁에 따른 피해와 수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판매과정을 기록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는 말이다. 고객 녹취파일은 해당 기록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 9월 말 전 은행권이 금융감독원과 함께 제정한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도 은행들의 등을 떠밀었다는 설명이다. 해당 모범규준은 2018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지난해 마련됐다.

해당 모범규준 안에는 일부 금융투자상품에만 제한적으로 실시하던 해피콜 제도를 비예금 전 상품으로 확대하고, 부적합 투자자와 65세 고령자뿐만 아니라 일반 고객에 대해서도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범규준은 지난해 말까지 내규에 반영하게 했지만, 이행 여부는 자율에 맡겼기 때문에 은행이 굳이 나서서 미리 실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2019년 말 금융당국이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고, 이달 초 개선방안 내용을 골자로 삼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달 초 국무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역시 고난도 금융상품에 대한 판매규제 강화안을 담고 있다. 고령자와 부적합투자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투자상품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하도록 했고, 개인 일반투자자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하는 경우에도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하도록 했다. 기존 자본시장법은 고난도 상품 판매 녹취 대상에 개인 일반투자자는 포함하지 않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발적 차원에서 해당 제도를 도입했는데, 금소법 시행에 따라 규정, 양식, 전산 등 제반사항을 변경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업무가 과중되는 상황"이라며 "정확한 지침과 답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전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녹취 과정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강남에 위치한 은행 영업점의 한 PB는 "녹취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관련 서류를 구비해 처리하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리는데, 여기에 상품설명까지 하려니 사모펀드 하나 가입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리고 있다"며 "녹취 내용이 모두 파일로 저장되기 때문에 상품 하나당 하나의 녹취만 할 수 있어서 2개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2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시중은행 영업점의 PB는 "65세 이상의 자산가 어르신들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 녹취를 하려고 하니 짜증을 내며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다"며 "접대 자체가 어려워지다보니 '녹취 강화 제도가 처음이라 이런 거지, 몇달 지나면 완화될 수 것'이라고 어디서 들어본적 없는 근거없는 설명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모바일 비대면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대안이 쏟아진다. 개인마다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 마련이라 개인 맞춤형 녹취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상품 가입을 애초에 모바일 비대면을 통해서만 받아야 한다는 의견 등이다. 모바일 비대면을 통해 가입할 경우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일부나마 투자자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도 상품판매 녹취 범위를 넓힌 우리은행의 올해 사모펀드 판매 실적은 전무하다.

금융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달 9일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시행됐고 이달 25일 금소법이 시행될 예정인데, 제도를 바꿀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제도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준비해 나가면서, 부족한 사항은 시장의 의견을 꾸준히 청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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