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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1.6km의 여정 [thebell note]

김도현 기자공개 2024-02-19 07:31:17

이 기사는 2024년 02월 16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걸어서 약 30분이면 갈 수 있는 1.6킬로미터(km). 삼성전자 서초사옥과 서울중앙지방법원 간 거리다. 이 구간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 10월부터 2024년 2월까지 96차례나 오갔다.

최근 이 회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3년5개월 만에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났다. 재계 관계자는 선고공판 당일 이 회장이 법정에 선 뒤 서초사옥 내 집무실로 복귀한 것을 두고 "그 짧은 거리를 돌아가는데 오래도 걸렸다"고 한탄했다.

잠시나마 풀린 족쇄는 설 연휴를 앞두고 검찰의 항소로 다시 채워졌다. 집행유예도 아닌 무죄가 나온 만큼 '기계적 항소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검찰은 "판결과 견해차가 크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상태다. 주축인 반도체와 가전 부문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처음으로 애플에 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내줬고 24년 만에 소니에 연간 영업이익을 따라잡히기도 했다. 수년간 거론된 대형 인수합병(M&A)은 2017년 하만 이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룹 내 주요 먹거리인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사업은 중국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린 2016년부터 장기간 총수 및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2014년부터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자리를 비운 부분까지 고려하면 삼성은 10년의 세월을 선장 없이 항해한 셈이다. 이를 거치면서 '관리의 삼성'은 옛말이 됐다.

국내 대기업 특성상 그룹 총수의 역할은 글로벌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그 이상이다. 정의선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공백 없이 진두지휘한 현대자동차와 LG전자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달성한 점에서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때보다 삼성에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기에 이 회장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공판을 위해 재차 수십~수백 차례 법원 출석해야 하는 처지다. 가깝고도 먼 1.6km의 지난한 여정이 수년간 반복된다.

이 회장은 1심 선고 다음날인 이달 6일 아랍에미리트(UAE)로 출국했고 이후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삼성SDI 배터리 공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고 강조했다. 도전과 변화가 필요한 삼성에 위축되지 않을 환경이 마련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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