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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desk]'포식자' SK의 길

김용관 산업1부장 겸 부국장공개 2024-07-24 07:50:07

이 기사는 2024년 07월 23일 06: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SK가 그룹 전체의 사업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다. SK는 '리밸런싱'이라고 부른다. 과도한 투자에 대한 점검 과정을 통해 시장 변화와 어울리지 않는 사업군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합병 및 매각, 분할 등 일반 기업에서는 십수년에 걸쳐 한번이나 있을 중대한 경영 사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리밸런싱의 핵심은 'SK온 이병 살리기'. SK그룹 미래를 책임질 배터리사업의 성공을 위해 그룹 전체가 나서고 있다.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은 없다고 한다. 돈을 잘 벌어 곳간을 축내지 않고 투자금을 조달하는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세상 일은 항상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투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SK E&S를 합병, 재무적 역량을 키우려고 한다. 확실치 않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게 맞냐는 계열사들의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선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SK그룹의 '위기'를 언급하고 있다.

# 영화 '혹성 탈출'의 주인공은 유인원이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그리고 인간 등 다양한 유인원이 등장한다. 극중에서 인간은 다른 유인원에게 지배받는 호모종으로 묘사된다. 세상을 지배했던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퇴화했고 고릴라나 오랑우탄은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며 우세종으로 거듭난다. 실제로는 변화에 대한 수용 능력이 탁월한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다양한 호모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생존을 위한 핵심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의지다. SK는 지금 그 자체로도 우량한 회사다. 만년 2인자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가 못한 것을 해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그 자체로도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는 좋은 회사다. 하지만 SK는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서 죽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배터리 사업이) 지금 주춤하고 있더라도 미래 성장성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까지 사업을 잘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된다"며 '오만(hubris)'을 경계했다. SK이노베이션(옛 유공), SK텔레콤(한국이동통신), SK하이닉스 등 성공 방정식에 취해 있던 SK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최 회장의 사촌, 최창원 SK디스커버리그룹 부회장이 있다.

지난해 연말 SK그룹 수장이 된 최 부회장은 급작스럽게 바뀌고 있는 외부 환경을 재빠르게 포착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된지 6개월만에 그룹의 모든 것을 흔들고 있다.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오래된 리더십을 전격적으로 교체하는 동시에 조직의 변화를 위해 엄청난 외부 충격을 가하고 있다. 회사별 입장이 다른만큼 내부 불만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평소라면 확인할 수 없는 밑바닥을 병을 뒤집어 놓으면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 부회장의 방법은 옳다.

성공의 길만 걸어온 SK 구성원들도 변화가 두렵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만심이 가득할 때 찾아온다. SK는 지금 흔들리고 넘어지는 과정을 통해 완전히 다른 시야로 스스로를 점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자존심은 살짝 내려놓아도 좋다. 결국 살아남는 기업은 성공한 기업이 아니라 변화에 잘 대응한 기업이다. 10년 아니 기껏 5년 후 SK는 거친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포식자'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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