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기 전선업계 톺아보기] '다시 뛰는' 대한전선, 해저케이블로 새 판 짠다③호반 편입 후 재무안정성 확보, 초고압 제품 집중…수주잔고 확대
유나겸 기자공개 2024-12-27 10:15:17
[편집자주]
한 줄의 전선에도 다양한 기업들의 기술이 담겨 있다. 전선 한 줄이 완성되는 과정에는 원자재부터 설비에 이르기까지 복수 기업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전선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새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노후 전력망 교체 이슈 등으로 글로벌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덕분이다. 국내 전선 기업의 강점과 기회 요인을 비롯해 전선 생산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기업들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23일 11: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한전선은 최근 몇 년 사이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무엇보다 주인이 호반그룹으로 바뀐 게 가장 큰 변화다. 결과는 상당히 양호했다. 유동성 위기와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흔들렸던 곳이지만 새 주인의 적극적 지원 하에 재도약 발판이 확실히 마련된 모양새다.이런 가운데 전선업계 호황까지 맞이했다. 발맞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적극 추진 중이다.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초고압(EHV) 및 고압(HV) 제품을 중심으로 신규 수주를 확대 중이고 미래 먹거리 해저케이블 사업도 본격화했다.
◇주인 '세 번' 바뀌었지만…호반 품에서 안정 궤도
1941년 설립된 대한전선(옛 조선전선)은 국내 최초의 전선 회사다. 매출 3조원대의 대형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차례 위기를 겪으며 굴곡진 역사를 써왔다.
1964년 국내 최초로 전선을 수출하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동남아시아와 중동은 물론 미국, 호주, 일본 등 선진 시장을 개척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1990년대 말까지 국내 전선 업계 1위를 유지했던 대한전선은 이후 LS전선에 선두 자리를 내주며 성장이 정체됐다. 유동성 위기가 겹치면서 구조조정을 겪었고 사모투자펀드(PEF)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에 매각되는 등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전환점은 2021년 호반산업이 IMM PE로부터 대한전선의 지분을 인수하며 찾아왔다. 새 주인을 맞은 대한전선은 체질 개선과 함께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재무구조 개선이다. 2019년 말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290%를 넘었던 대한전선은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했다.
2021년 11월 호반산업 인수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기존 액면가 500원인 보통주를 100원으로 감액해 자본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났다. 이후 12월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이중 2000억원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며 부채를 줄였다. 이 과정에서 호반산업이 유상증자에 1971억원 규모로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대한전선의 부채비율은 단기간에 급격히 개선됐다. 2021년 말 연결기준 266%에 달했던 부채비율이 올 3분기 말 기준 56.45%로 대폭 낮아졌다.
재무 및 경영 안정성을 확보한 대한전선은 본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 유럽, 중동 등 주요 시장에서 EHV/HV 제품 중심의 신규 수주를 확대하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 역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결 기준 매출은 2021년 1조9977억원, 2022년 2조4505억원, 2023년 2조8440억원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올 3분기에는 매출 8044억원, 영업이익 27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7.68%, 56.3% 증가했다.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은 2조4573억원, 영업이익 934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7.67%, 58.04% 성장했다. 역대급 실적이다.
신규 수주 소식도 잇따라 들리고 있다. 올해 4분기에는 싱가포르 전력청으로부터 1400억원 규모의 초고압 전력망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포함해 미국, 스웨덴, 국내를 아우르며 1조2000억원 이상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호황기 제대로 누린다…'해저케이블' 시장 공략
재무건전성과 경영 안정성을 확보한 대한전선의 다음 스텝은 미래 먹거리 발굴이었다. 글로벌 전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재무상태가 좋아지면서 미래 먹거리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
대한전선이 뛰어든 분야는 다름 아닌 해저케이블 사업이다. 해저케이블은 전선업계의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제조 가능한 업체가 소수에 불과해 이익률이 높고 고난도 기술과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는 만큼 진입장벽도 높아서다. 국내에서 해저케이블 사업을 운영 중인 기업은 LS전선과 대한전선 두 곳뿐이다.
해저케이블 시장의 후발주자인 만큼 대형 해저케이블 생산기지 확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형 해저케이블 수출을 위해 항구와 가까운 고대부두 인근에 해저케이블 1공장 부지를 마련, 2022년 12월 착공했다. 2022년 12월 결정한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금액 중 2000억원을 활용했다.
이어 7200억원 규모의 2공장 건설도 2027년 준공 목표로 추진 중이다. 해저케이블 사업의 핵심 설비로 꼽히는 포설선도 빠르게 확보했다. 1공장 착공한 지 일 년만에 6200톤급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을 매입했다. 1공장 완공도 전에 포설선 인수를 완료한 셈이다.
LS전선이 첫 해저케이블 공장을 착공하고 포설선을 취항하기까지 14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대한전선은 엄청난 속도로 해저케이블 사업 기반을 구축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소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해저케이블 시장을 이미 장악하고 있어 대한전선의 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대한전선은 빠른 준비와 과감한 투자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내 유일의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인 'PALOS'를 도입해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PALOS호는 자체 항해 능력과 정밀한 위치 제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케이블 운송 및 포설 과정에서 시간 단축과 높은 안정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강점을 기반으로 대한전선은 설계, 생산, 운송, 시공, 시험, 유지보수 등 해저케이블 사업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풀 벨류체인을 구축하며 경쟁력을 강화했다.
업계는 대한전선의 강점인 EHV/HV 전선 포트폴리오에 해저케이블 사업까지 더해질 경우 글로벌 전선 기업으로서 성장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대한전선이 해저케이블 시장에 다소 늦게 진입했지만 뛰어난 기술력과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할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며 “구조조정 후 몇 년 만에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낸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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