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1월 21일 07시0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막내 기자 시절, 주된 업무 중 하나는 '뻗치기'였다. 주요 인물의 동선을 파악해 현장에서 대기하며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정보를 건질 때도 있었다. 비효율적이어도 현장에 나가는 이유였다.한 번은 며칠간 동선을 분석해 새벽부터 출입처 사옥 앞에서 오너를 기다렸다. 오너의 출근길을 포착했으나 경비의 제지로 다가서지 못했다. 이후 친한 선배가 출근길에 경비를 뚫고 기회를 잡았지만 그 오너는 "한국 경제나 걱정해라"는 핀잔을 주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약 7년 전에는 은둔형 오너로 알려진 출입처 대표의 국정감사 일정을 체크해 국회로 향한 적이 있다. 그가 등장하자 바로 달려갔으나 오너를 보좌하던 두 명의 직원들에게 양 팔을 붙잡혀 제지당해 눈물을 쏙 뺀 적도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오너나 대표들은 기자들의 뻗치기를 불편해하는 편이다.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리더들도 있지만 소수의 사례다. 극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고 호통을 치는 인물들도 많다. 뻗치기로 인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쌓이다 보니 주요 리더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것은 점점 쉽지 않아졌다.
얼마 전 길 한복판에서 허서홍 GS리테일 대표를 우연히 알아봤을 때도 고민이 있었다.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는데 허 대표는 당황하지 않고 미소로 응대했다. 대부분 일행이 제지하거나, 사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허 대표는 달랐다.
몇 분간의 짧은 대화 끝에 그는 아직 선임 초기라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전했고, 그 태도에서 유연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그의 태도는 리더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공교롭게 허 대표 취임 초반부터 9만명의 개인정보 유출 이슈 등으로 잡음이 생긴 상황이다. 허 대표 체제에서 GS리테일의 선두 입지를 굳힐 카드로 '디지털(온라인)'로 내세우고 내부 조직도 재정비했는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친 것이다. 해킹 이슈 직후 뻔한 사과문에 보상 관련 계획을 내놓지 않은 점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사실 새로운 리더십 체제가 정착이 되지 않아 아쉬운 초기 대응을 한걸로 내심 판단했다.
하지만 짧게 스치며 느낀 허 대표는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과 오너 가로서의 자부심도 갖춘 것으로 보였다. 이에 따라 이번 공식 입장은 표면적 메시지일 뿐 정보 보안 투자 확대 등 실질적으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감 있는 리더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일종의 합리적 기대감이다.
허 대표가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트렌드에 발맞춘 전략적인 변화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길 바란다. 리스크의 본질을 파악해 유연하게 대응하며 업계 1위 기업의 새 리더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할 기회를 제공한다. 허 대표가 이번 리스크를 '오너 4세'라는 수식어를 넘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경영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기회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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