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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 건배사 '남행열차'의 추억

이진우 전무공개 2025-01-23 09:13:17

이 기사는 2025년 01월 22일 10시2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전 신년모임을 겸한 저녁 자리에서 한 지인이 ‘남행열차’로 사행시 건배사를 했다. '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 '차'기정권을 의식하자. 그런데 예전에 들었던거랑 버전이 좀 달라졌다. 수년전 다른 자리에서 들은 남행열차 건배사는 '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 '차'세대 리더가 됩시다였다.

건배사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여러 술자리 모임에서 피하고 싶지만 늘 차례가 돌아와 무슨 건배사를 할지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건배사를 없애자"로 건배사를 한 적도 있다. 어쨌거나 분위기를 살리거나 유대감을 높이자고 하는 만큼 위트 있고 참신한 건배사를 해야 박수를 크게 받는다.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로 시작되는 가수 김수희의 히트곡 남행열차는 여러 버전으로 등장하는 단골 건배사 메뉴다. '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까지는 같은데 그 다음이 '차'기정권에 잘하자, '차'기정권에 잘보이자, '차'기정권까지 살아남자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남'은 기간 '행'동 조심, '열'심히 눈치보며 '차'기를 노리자는 신작(?)도 눈에 띈다.

찾아보니 주로 정권이 바뀌는 시기, 공무원 조직에서 주기적으로 남행열차 건배사가 유행한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공직사회의 뒤숭숭한 불안감, 자조적인 초조함 등이 묻어나 있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은 정권교체를 전후해 승진 또는 발탁이 될 수도, 반대로 물을 먹거나 아예 집으로 갈 수도 있는 운명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권교체기는 정치, 사회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된다. 한마디로 불안한 세태의 반영이다.

난데 없는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등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2025년 을사년 정초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공직사회 뿐 아니라 재계와 금융권도 '국정 공백' 사태가 이어지면서 여당과 야당 눈치를 보느라 숨죽이는 눈치다. 계엄에 대한 비판 여론 속에 정권교체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대관조직 재정비, 야당이 추진 중인 법안이 경영에 미칠 영향 파악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구호를 앞세워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2기 정부가 본격 출범하면서 국제정세도 그야말로 대 변혁기를 맞고 있다. 대기업, 중견기업 가릴 것 없이 극도의 정치경제적 혼란과 경기침체,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몰아치면서 실적부진을 실감하고 있다. 비상경영, 비용절감, 희망퇴직, 구조조정 등의 단어가 수시로 뉴스에 등장해도 별로 놀랍지 않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경영진의 새해 다짐과 당부도 진부하게 느껴진다.

다시 남행열차 건배사로 돌아가면 '남'들이 어렵다 해도 '행'복을 꿈꾸며 '열'일을 하면 '차'후에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또 다른 지인의 건배사에 더 눈길이 간다. 다른 한편으론 이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다시 5년 뒤, 정권이 바뀔 때쯤엔 또 어떤 버전의 남행열차 사행시가 등장할지 문득 궁금해 진다.

사족이지만 곧 있을 설 명절을 앞두고 어디선가 들은 이런 버전의 남행열차 사행시도 소개한다. ‘남’자들도 ‘행’주치마 입고 ‘열’심히 상'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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