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2월 10일 07시0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짙은 갈색 중절모를 쓴 노신사. 한눈에 봐도 차림새에서 품격이 느껴지는 그가 인사동의 한 조그만 갤러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남표 민병훈 작가의 2인전 '애월에' 전시 오프닝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홀로 들어선 그는 뒷짐을 지고 양 벽에 전시된 대형 그림과 영상을 찬찬히 둘러봤다. 익숙한 듯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예술구호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전시 소개가 끝나고 주최자가 갑작스레 덕담을 요청했는데 김 회장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예술이란 여럿이 모여 이룬 공동의 삶을 영위하는데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얘기를 당부하듯 했다.
그동안 김희근 회장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미술계 인사였다. 미술품 컬렉터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다수가 빼놓지 않고 그를 추천했다. 한 차례 김 회장을 만나 두 세시간 편안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실감했다. 단지 그가 이룬 1000여점의 컬렉션이 예술 애호의 전부가 아니었다.
김 회장은 별다른 주제 아닌 '예술'에 관한 흔한 질문 하나에도 몇십분씩 절절한 스토리를 꺼내 놓을 정도로 예술에 진심이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한없이 다정다감했고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서도 조언이나 애정의 깊이가 달랐다. 취재 현장에서 미술업계에 참된 어른이 없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김 회장이야 말로 참된 어른이었다.
그가 예술계의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것도 공감되는 부분이다. 자금적 지원은 물론 굵직한 문화예술기관 보드멤버로 참여해 바른 정책 방향을 위해 목소리도 내왔다. 예술 애호가 사단법인의 회장직이나 메세나협회장 직을 맡아 예술경영의 선봉에 서왔다. 국내 미술 교육이 부족하던 시기 교육프로그램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컬렉터 대상 교육에 강사로 나서 틈틈이 미술계에 조력하고 있다.
기업 경영자 가운데 예술 애호가는 많다. 많은 기업이 사회공헌이라는 이름으로 자생력이 부족한 문화예술 분야에 물질적 후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 회장처럼 몸소 깊숙히 침투해 발전에 조력하는 패트런(후원가)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큰 컬렉터 중 기업인들이 많지만 세무적 이슈에 따른 제약으로 나서기 꺼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쉽다.
기업인으로 일군 부를 예술계에 공헌하겠다 마음먹는다면 김희근 회장은 더없이 좋은 귀감이다. 김 회장이야말로 예술경영이란 수식어에 꼭 맞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와 기억에 남는다.
"예술은 경영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국격이 예술의 수준으로 정해진다고들 말하듯 개인의 품격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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