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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interview]"상법 개정안은 자본시장 리트머스 시험지"박유경 네덜란드연금 전무 "SK, 이사회 경영 추구하면서 상법 개정안 반대…납득 어려워"

이돈섭 기자공개 2025-04-02 08:23:10

이 기사는 2025년 03월 28일 16시00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달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해외 투자자들이 대거 입국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APG) 이머징 시장 책임투자부 총괄전무(Head of Global Emerging Markets Equities, Fundamental Strategies 사진)도 그 중 한 명이다. 네덜란드연기금 자금이 투입된 기업 주총에 참여하면서 박 전무는 "시장이 후퇴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삼은 상법 개정안이 실제 시행되지 못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국장에서 대거 빠져나갈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상법 개정안 시행 여부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게 박 전무가 가진 생각이다.

◇ SK그룹, 이사회 경영 추구하면서 상법 개정안에는 반대

박 전무는 1995년 베어링증권을 시작으로 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외국계 증권사에 근무하다가 2009년 네덜란드연기금에 합류, 현재 홍콩에서 이머징시장 마켓을 총괄하고 있다. 이달 국내 기업 정기주총 시즌을 맞아 한국 시장을 찾은 박 전무는 SK를 비롯해 LG화학 등 네덜란드연기금 자금이 투입된 기업 주총에 출석하며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오랜기간 외국인 입장에서 국내 자본시장을 지켜봐 온 그의 올해 감상평은 '답답하다'로 요약된다. 박 전무는 "밸류업 정책의 핵심은 도메스틱(Domestic·국내) 비즈니스를 어떻게 인터내셔널(International·국제)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느냐"라면서 "그런 측면에서 상법 개정안 방향에 동의하는데 몇몇 상황들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미지=APG]
SK그룹 사례가 대표적이다. SK그룹은 최근 6년 간 이사회 중심 책임경영 체제 구축을 기치로 주요 상장 계열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한편,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기 시작했다.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감독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투명한 경영 문화를 정착시키고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경영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위시한 재계 관계자들은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류진 한국경영인협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과 함께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을 찾아 남소 등 상법 개정안 시행이 초래할 부작용을 우려했다.

상법 개정안 골자는 주주의 충실의무 대상 범위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주주로부터 경영진 견제·감시 의무를 위임받은 이사회가 주주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왜 문제란 말인가라는게 박 전무의 의문이다. 주주는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그 대신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을 견제·감시하고 주총에서 최근 1년 성과를 보고받고 여타 이슈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영권을 쥔 오너십 프리미엄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경영권'이라는 말 자체가 해외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상속세법 상 대주주에는 20%의 할증이 붙는데 이 역시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도통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모든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재벌이라는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박 전무는 "이사회는 주주 권한을 위임받아 경영진을 견제·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위치에 서 있는지 여부와 또 그럴만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면서 "이사회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주주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상법 개정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 SK그룹이 왜 이런 행보를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기관 입장에서 롱텀 보유 어려워져…이사회 기능 강화 절실

박 전무가 대주주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성장 사이클을 볼때 대주주가 있는 편이 여러모로 좋은 점도 많다. 하지만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와 LG화학 물적분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과 같이 대주주와 일반주주 사이 이익이 상충되는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일반주주가 경영진과 소통할 채널이 미흡하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일반주주 41만여 명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총 68.2%에 달한다. 전체 지분 절반 이상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주주 전체 이익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은 시장의 평가를 낮출 뿐이다. 외국의 경우 사외이사가 NDR에 참여해 직접 주주를 만나 외부인 시각에서 회사 사정을 설명키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다.

박 전무는 "해외 기관 사이에서는 한국 시장이 자칫 단일 시장으로 취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면서 "MSCI 이머징마켓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남미 국가를 별개로 보지 않고 남미 시장 전체로 보는 것과 같이 이머징 시장 전체 일부로 전락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와 자본시장 역사가 비슷한 대만 기업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사회 구성과 일반주주 보호 장치가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시장에서는 대만 TSMC가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로 이사회 자리 대부분을 채운 모습과 국내 관료와 법조인, 교수 등으로 이사회를 꾸린 삼성전자 이사회 모습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문턱을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박 전무는 "자본시장 30년 역사를 가졌다면 권리와 함께 의무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상법 개정안 시행 여부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강조했다.

SK 주총에서 박 전무는 이렇다 할 대답을 얻지 못했다. 박 전무에게 "나중에 설명하겠다"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박 전무는 "일반주주 권리를 지킬 방법이 마땅히 없고 네덜란드연기금 시각도 다르지 않다"면서 "이 사태가 초래할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주식 자체를 오랜기간 갖고 있을 수 없어 수익을 볼때마다 내다 팔게 된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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