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3월 04일 08: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꼬박 3년 6개월이 흘렀다. 지난 2012년 9월 수천억 원을 투입해 인수한 계열 건설사에 대한 과도한 지급보증으로 모회사가 결국 법원 문을 두드렸다. 시중은행 등 채권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채무를 갚기 위해 평생 일군 알짜 자회사를 처분했다. 수중에 남은 건 비주력 계열사와 산더미 같은 빚이 전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너는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까지 당했다. 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망했다고 했다.'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얘기다. 당시 업계는 윤 회장이 무리하게 건설업에 손을 댔다가 전 재산을 날렸다고 했다. 그룹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컨설팅업체 출신의 젊은 재무담당임원(CFO)을 두고 뒷말도 무성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채용 배경과 그의 행적을 두고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어쩌랴. 자업자득인 것을.
윤 회장은 그러나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극동건설과 동반 법정관리에 들어간 웅진(옛 웅진홀딩스)은 2014년 초 채무의 80%를 조기 상환하고, 정상 기업으로 복귀했다. 그 동안 갚은 돈이 1조 2000억 원을 웃돈다. 주력 자회사인 웅진씽크빅도 모기업의 법정관리에도 불구하고,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순익을 냈다. 태양광 사업을 하는 웅진에너지도 적자 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눈 여겨 볼 대목은 웅진이 법정관리의 혹독한 겨울을 보냈는데도, 지분 소유구조상 오너 지배력이 건재하다는 점이다. 윤 회장은 웅진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로 주식을 대규모 감자 당했다. 현재 그는 웅진과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등의 주력 계열사 주식 1주도 갖고 있지 않다. 대주주 책임론에 이어 배임·횡령 혐의까지 받으면서 지분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에게는 형덕·새봄 두 아들이 있다. 둘은 나란히 그룹 계열사 대리로 입사해 전무 자리에 올랐다. 윤 회장은 웅진의 법정관리 졸업 직전인 2013년 말 두 아들로 하여금 지분을 인수케 했다. 본인 소유 웅진 주식도 두 형제에게 양도했다. 이어 두 형제는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 등 계열사 지분을 사들였다.
윤 회장은 지배력을 상실했으나 자녀들을 통해 소유권을 되찾은 셈이다. 자연스레 가업 상속도 이뤄졌다. 이처럼 오너 2세들의 웅진 지분 취득이 가능했던 이유는 회생계획 인가 과정에서 변제 자금 마련을 위해 3자 배정을 통한 주식 취득 권한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주식 매입에는 코웨이 지분 매각대금이 투입됐다. 형덕·새봄 형제가 각각 보유한 코웨이 지분 1.26%(97만 4923주)가 밑천이 됐다. 사실상 이 때부터 윤 회장의 웅진 되찾기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두 아들은 그에게 그룹을 되찾을 카드였다.
윤 회장은 최근 두 아들을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로 올렸다. 내성적이고 신중한 장남 형덕 씨에게 신사업을, 외향적인 새봄 씨에게 기존 사업을 맡겼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윤 회장다운 '위험 관리'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주요 의사결정과 사업 전략 수립은 윤 회장 몫이다.
웅진은 올해 터키 정수기 렌털 시장에 진출한다. 코웨이를 인수한 MBK파트너스와 맺은 겸업 금지 조항에 따라 2018년 1월까지 국내에서 정수기 사업을 할 수 없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았지만 웅진이 국내 정수기 시장에 진출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와 맞물려 윤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 시나리오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국내 정수기 시장 진출은 그룹 재건의 방점을 찍는 일이다. 어쩌면 정수기 사업 재개는 윤 회장이 가슴에 묻어둔 진짜 '히든카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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