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4월 25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TX그룹의 좌우날개였던 STX팬오션과 STX조선의 운명은 씁쓸하다. 싱가포르 상장으로 글로벌 선사를 꿈꿨던 STX팬오션은 우여곡절 끝에 하림그룹에 팔렸고 STX조선 역시 산업은행과 농협은행 등 채권단으로 주인이 바뀌었다.그런데 그 과정에는 차이가 있었다. STX팬오션은 법정관리를 거쳤고 STX조선은 법원 문턱에도 가지 않은 채 연명하고 있다. 사실 STX팬오션에 비해 STX조선의 상황은 더 안 좋았다. STX조선은 법정관리를 몇 번이나 거쳐도 모자랄 판에 자율협약이라는 정상도 아닌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상태도 아닌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
비단 STX조선 뿐 아니다.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등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조선사들도 의외로 법정관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차이는 바로 채권단이 쥐고 있는 선수금환급보증, 즉 RG가 설명해준다. 선박 발주처에서 선수금을 미리 주고 이에 대해 은행들이 보증을 서는 게 RG다. 조선사가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발주처는 선박 수주를 취소하고 곧바로 은행에 RG 콜(call)을 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가지고 있는 RG 규모만큼 한꺼번에 돈을 물어내야 한다. RG는 국내 은행들이 쥐고 있는 조선사 채권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채권단은 아무리 경영상태가 안 좋아도 조선사의 법정관리를 원치 않는다.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선박은 발주가 취소되면 바로 고철 값이 된다. 그래서 법정관리가 아닌 자율협약으로 돈을 계속 대면서 선박이 건조될 때까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보유 채권을 한방에 날리느니 긴 시간동안 기다려서 어느 정도는 회수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인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 채권단 입장에서 해운사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다르다. 길게 끌고 갈수록 투입되는 돈이 늘어나지만 업황이 급격히 반등하지 않는 이상 나아지거나 덜 깨지는 게 없다. 채권단은 해운사 유동성 함정의 핵심인 용선료 협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선주와 채권단 모두가 비슷한 조건으로 조정에 나서야 하는 글로벌 채권 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시각이다. 차라리 용선료를 포함한 채무 재조정을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법정관리가 '빚세탁'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채권단도 해운사 채권은 이미 충분히 상각 처리를 하고 있어 당장 빚잔치를 해도 큰 충격이 없다.
법정관리는 오너 입장에서 보면 경영권 문제와 직결된다. 그래서 채권단과 오너간 절충으로 조선사 접근방식과 동일하게 해운사도 자율협약을 맺게 됐다. 자율협약은 용선료 협상에 대한 기대를 남김과 동시에 경영권에 대한 일말의 여지를 살려 놓는 방식이다.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건 채권단 입장에서 최적의 혹은 최종의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주 한진해운 일가가 백기를 들었다.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한진해운 전 회장)은 한진해운 지분을 모두 팔았고 조양호 회장은 경영권 포기까지 선언해 버렸다. 이로써 항간에서 떠돌았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퍼즐이 어느 정도 맞춰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합병 방식과 과정은 미궁이다.
같은 처지지만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현대상선이 다급해졌다. 한진해운의 백기투항에 현대상선은 용선료 협상 실패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 채권단이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지를 염두에 둬야할지도 모르게 됐다. 현대증권을 성공리에 매각한 현정은 회장이 또 한번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현 회장과 현대상선, 돌리기에는 참 벅찬 한국 해운산업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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