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6월 24일 07: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년전 핀란드 국민총생산(GDP)의 24%를 책임졌던 노키아가 무너지면서 그 나라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졌다.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스타트업을 강조했지만 뿌리를 못내리고 있다. 이미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중소기업 정책의 방향이 조금더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면 된다. 내년 말로 다가온 벤처관련 특별법의 개정이 중요한 이유다"지난 22일 열린 '2016 더벨 벤처캐피탈 포럼'에 참석한 모 벤처캐피탈 고위 임원의 말이다. 투자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의 말은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철강과 조선, 해운, 석유화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산업들이 힘 없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도 고려됐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처특별법)은 1997년 제정된 후 20년이 지났다. 제정 당시 법의 효력기간은 10년으로 정해졌지만 10년째 되던 2007년 효력을 10년 더 연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년간 벤처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자금은 모태펀드(한국벤처투자)를 중심으로 12조원, 성장사다리펀드(정책금융공사 포함) 약 4조5000억원, KIF펀드 5000억원, 농식품모태펀드 5000억원 등 18조원에 이른다.
벤처특별법 도입 이후 벤처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이 3만 개 이상 창업됐다. 벤처기업이 GDP 성장율의 22%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아쉬움도 있다. 정부주도형으로 성장하다보니 아직까지 순수 민간자금의 비중이 현저히 낮다. 투자시장과 펀드레이징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지만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등 회수시장이 기형적으로 위축된 모습도 보인다.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전문심사역 2명 이상 확보'라는 벤처캐피탈 설립요건도 있고, 모태펀드의 출자가 없으면 한국벤처투자조합(KVF) 결성 자체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투자재원은 충분히 남아있지만 투자기간이 끝나 펀드해산 절차를 밟아야만 하는 웃지못한 일도 있고, 특정지역, 특정산업에 60%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의무투자비율이라는 것도 있다. 모두 정부주도형 벤처육성 정책의 산물들이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자본시장통합법 등 관련법도 많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법을 검토하다가 투자기회를 놓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2015년 8월 한국벤처투자가 출자하는 글로벌헬스케어펀드의 위탁운용사(GP) 자리를 놓고 벤처캐피탈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일이 있다. 당시 '인터베스트-산업은행'과 'KB인베스트먼트-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두 곳으로 경쟁이 압축된 가운데 이들이 제안한 펀드 구조가 도마에 올랐다. 인터베스트와 산은은 출자대상 투자기구로 사모투자펀드(PEF)를 내세운 반면 KB인베스트와 솔리더스는 한국벤처투자조합(KVF)을 선택했다.
PEF로 구조를 설계한 쪽은 투자 대상의 폭이 넓다는 점에 주목했다. 원칙적으로 KVF는 투자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해외 진출이 가능한 규모의 제약사는 물론이고 국내 제약사 상당수는 현재 대기업으로 분류돼 있다. 본래 정책목적에 부합한 딜을 찾기가 까다로운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벤처투자업계에서 여러 관련법에 산재해 있는 유사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통합하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사한 기능간 규제 차이로 비능률적이고 불합리한 요인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그래야 순수 민간자금이 벤처투자업계로 유입되고,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넘기는 벤처기업, 소위 '유니콘'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수조원을 쏟아 붓고도 한국의 유니콘이 미국(30개), 아시아(19개), 유럽(10개)의 10분의 1도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내년 말로 일몰을 맞는 벤처특별법에 대한 개정논의가 2007년 졸속으로 처리됐던 것과 달리 시의적절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 개정에 있어 중요한 원칙이 있다. 정부 부처간 힘겨루기는 안된다. 잡다한 규제를 없애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지난 20년간의 벤처정책의 성과가 극대화 될 수 있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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