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3월 20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대부분이 기업 눈치를 봐가며 리포트를 작성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일처럼 기업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대기업은 증권 발행이나 주식 위탁매매, 자산관리 등 각 분야에서 증권사에 일감을 주는 갑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다.지난 9일 열린 기아자동차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일부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내 화제다. 한국운용은 기아차 사외이사 신규 선임과 관련해 주주 가치 제고에 반하는 내용이라며 반대표를 던졌다. 한국운용은 같은날 있었던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도 정관 변경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는 등 활발하게 의결권을 행사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함께 운용사가 의결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하던 바였다. 그럼에도 을 입장인 운용사가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주총에 두번 연속 반대의견을 냈다는 사실은 이목을 끌만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운용은 한국투자증권의 100% 자회사다. 모회사와 대기업 간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과감히 반대표를 던졌다는데 업계 관계자들은 주목했다.
그동안 기업과 증권사 간 자연스레 정립돼 있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투자일임재산이나 펀드 운용규모가 큰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사사건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힘의 무게추가 조금은 균형을 맞춰가는 쪽으로 이동하게 되지 않을까.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추진했을 때 삼성 측은 엘리엇의 합병 반대 의견에 맞서기 위해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다. 엘리엇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당시 7% 정도였다. 삼성은 합병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려고 전사적으로 나서야 했고, 삼성물산 주식을 갖고 있던 개인에게 대리 위임장을 받기 위해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기업에게 적극 목소리 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에 수긍하게 된다. 삼성의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합병처럼 중요한 의안이 주총 안건으로 올라오면 이들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장에는 이번 한국운용의 의결권 행사가 화제를 모았을지 몰라도 앞으로 이런 사건들은 다소 흔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증권사, 자산운용사는 계속 많아지고 있다. 이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런 현상이 될 것이다.
삼성물산 합병 이슈처럼 기업 운명의 향방을 좌우할 주총 표대결도 앞으로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 실제 오는 23일 코스닥 상장사 골프존 주총에서는 최대주주(20.28%)와 KB자산운용(18.52%) 간 기업 M&A 관련 찬반 대결이 예고되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업계에 불러올 변화가 적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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