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스관'으로 승부수 띄우는 세아제강 美 통상압박에도 거뜬…포항공장, 'JCOE' 설비 구축 결실
포항(경북)=심희진 기자공개 2018-09-03 08:37:18
이 기사는 2018년 08월 31일 08: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나라 강관 제조업은 바로 이곳에서 성장했다" 세아제강 포항공장을 소개하는 은성수 생산3팀장의 인사말에서 강관분야 '선봉장'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올해로 지어진 지 40년이나 됐지만 포항공장은 마치 엊그제 완공된 것처럼 정돈된 모습으로 여러 종류의 강관을 쉼없이 생산하고 있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강관 수출의 전초기지였던 세아제강 포항공장은 올들어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트럼프 정부의 강도 높은 통상압박 때문이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쿼터(수입할당)제 영향으로 유정용강관(OCTG)의 최대 수요처인 미국 시장에서 판매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세아제강 포항공장이 꺼내든 반등 카드는 '러시아 PNG(Pipe-line Natural Gas) 사업'이다. 최근 남북관계 개선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에 직접 들여오는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우리나라까지 거리는 약 1100㎞. 이를 18m 길이의 가스관으로 이을 수 있는 기업은 세아제강이 유일하다. 2013년 JCOE 공장 설립으로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포항공장은 이제 열매를 거둘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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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7바퀴 열정이 만든 기적 'JCOE 생산라인'
포항공장에 도착해 처음 찾는 곳은 연산 24만톤 규모의 'JCOE' 생산라인이다. JCOE란 넙적한 후판을 1만톤급 프레스로 눌러 'J형→C형→O형' 순으로 동그랗게 마는 설비다. 이때 'E'는 확관기(expander)를 일컫는다. JCOE 설비를 통해 세아제강은 외경 최대 64인치, 두께 50㎜, 길이 18.3m의 가스관을 제작하고 있다.
2013년 1월 가동에 돌입한 JCOE 설비는 포항공장의 자부심 그 자체다. 아시아에서 18m 길이의 가스관을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은 세아제강뿐이다. 전 세계에서도 세아제강을 포함해 3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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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개발에 대한 직원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다. 임종표 기술연구소 연구개발팀장은 "JCOE 프로젝트를 위해 2010년부터 3~4년간 독일, 일본 등을 거쳐 지구 7바퀴를 돌았다"며 "쉘(Shell), 엑슨모빌(Exxon-mobil) 등의 오일 메이저(Oil major)와 한국가스공사를 비롯한 대형 파이프라인 발주처가 필요로 하는 가스관을 제작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이라고 말했다.
실제 눈으로 본 JCOE 생산라인은 제철소만큼이나 웅장했다. 공장 입구 왼편엔 다듬어지길 기다리는 수백장의 후판이 쌓여 있었다. 모양 만들기에 앞서 후판의 양끝을 잘라내는 엣지밀링(edge milling)과 끝단을 살짝 말아주는 프리밴딩(prebanding) 등의 10여가지 기구들이 굉음을 내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는 11월이면 캐나다로 떠날 7500톤의 18m 가스관들이 막바지 단계를 거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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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 시선을 끌었던 건 곳곳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conveyer belt)였다. JCOE 생산라인의 모든 공정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동으로 이뤄진다. 크레인으로 제품을 일일이 운반하다 보면 사고 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공정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항공장의 자동화 시스템은 세아제강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 팀장은 "포항공장은 용접기(welding)도 남다르다"며 "2극 제품을 사용하는 일반 강관사들과 달리 당사는 3극 용접기를 사용해 생산성을 30%가량 높였다"고 말했다. 가스관 불량이나 사고가 대부분 용접 부위에서 발생하는 만큼 사후 관리의 편의성 및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도 엿볼 수 있었다.
◇포항공장의 선견지명 '러시아 PNG 사업'
한가지 놀라운 점은 세아제강이 JCOE 생산라인을 구축할 때까지만 해도 18m 가스관을 찾는 고객이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세아제강은 장기적 관점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셈이다.
임 팀장은 "JCOE 생산라인은 10년, 20년 후를 바라보고 지은 공장"이라며 "비주류 품목부터 꾸준히 기술력을 입증한 덕분에 18m 제품에 대한 수주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5년간 공정 효율화를 거듭한 덕분에 현재 포항공장 JCOE 설비는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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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제강의 선견지명은 정확했다. 최근 남북관계 개선으로 러시아 PNG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18m 가스관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러시아 PNG 사업이란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총 1100㎞ 구간에 가스관을 설치해 천연가스 등을 운반하는 프로젝트다. 1㎞당 750톤가량의 강관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업에는 약 82만5000톤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세아제강은 JCOE 설비를 적극 활용해 러시아 PNG 수요를 충당할 방침이다.
백남준 기술연구소장은 "1100㎞ 구간 가운데 우리나라와 가까운 지역을 한국가스공사가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강관업체들에겐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길이뿐 아니라 품질 측면에서도 세아제강의 가스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러시아와 북한의 동절기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까지 내려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스관은 극저온 환경에서 강풍 등의 외부 충격을 버티는 인성을 갖춰야 한다. 포항공장에서 만드는 가스관은 이미 러시아 시베리아와 미국 알래스카 등에 납품된 전례가 있다. 영하 46도의 환경에서 충분히 버티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백 소장은 "세아제강은 업계에서 제조 기술, 품질 관리 등을 깐깐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하다"며 "미국이 통상정책으로 한국산 제품을 막는 것도 바꿔 말하면 그 방법 외엔 질적 승부에선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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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포항공장은 미국 정부의 통상압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쿼터제가 도입된 탓에 대미 수출물량에 제한이 생겼고, 그 결과 포항공장의 가동률은 최근 70%를 밑돌고 있다. 백 소장은 "대미 수출이 전체 매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쿼터제 도입은 공장 가동률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다만 판매처가 아닌 구경별로 제조라인이 구분돼있기 때문에 미국 대신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과의 거래량을 늘려 제품이 쌓이는 걸 막고 있다"고 말했다.
곤경에 처한 세아제강에게 러시아 PNG 사업은 단비가 될 전망이다. "마치 이번 사업을 예견한 듯 포항공장은 현재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백 소장의 자신감은 세아제강 미래에 대한 확신 그 자체였다. 오늘도 포항공장은 '최초'를 넘어 '최고'를 향해 분주히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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