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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편 첫 타깃…왜 한진이었나 ④[KCGI vs 한진家]적은 재원으로 지분율 확보 용이…여론악화, 지렛대 역할

한희연 기자공개 2019-01-28 08: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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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대응 전략을 내놓지 않고 '정중동'하는 듯 보이는 한진그룹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이어 터진 갑질 사태, 국민적 공분, 주요 권력기관의 잇따른 수사, 그리고 "너희들 문제가 많아 행동에 나서겠다"라고 말하는 듯 지분을 매집하고 달려든 한 펀드. 동시에 불붙은 '한국형 주주행동주의' 흐름과 국민연금의 주주관여 움직임. 한진그룹 수뇌부는 비상상황에 있다. 강성부 펀드라고해서 느긋하진 않다. 경제적 이슈를 넘어 정치적 관심사가 됐고 국민적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 분쟁이 어디로 가고 있고 분쟁 당사자들의 전략은 무엇인지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1월 23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KCGI는 지배구조 개선 타깃으로 수많은 국내 기업들 중 왜 하필 한진그룹을 택했을까. 한진그룹은 지주사인 한진칼을 정점으로 한 비교적 단순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지배구조를 뜯어고쳐야 할 만큼 복잡하거나 베일에 싸인 곳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한진그룹은 최근 몇 년간 오너가의 '갑질' 이슈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국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행동주의 펀드로서는 첫 타자로 한진그룹을 선택, 부정적인 여론을 틈타 오너가와 대결 구도를 형성했을 때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KCGI는 지난 21일 한진그룹의 기업가치 제고 위해 현 대주주(오너가)에게 제안한 내용을 공개했다. 제안한 내용에는 KCGI가 한진그룹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배구조개선 및 책임경영체제 확립방안 △유휴자산 정리를 통한 부채비율 개선과 신용등급 상승을 위한 노력 △ 그룹에 대한 사회적신뢰 제고와 임직원들의 자부심 고취를 위한 노력 등이다.

KCGI는 이 같은 제안을 공개하며 "한진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글로벌 항공·물류 전문그룹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고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합리성을 상실한 계열회사 지원에 따른 과도한 부채비율, 불필요한 유휴자산 보유와 방만한 경영 등으로 매우 저평가돼 있다고 봤다"고 이번 행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눈에 띄는 문장은 '대주주 일가의 각종 갑질 행태와 횡령·배임'이다. KCGI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휘말린 일련의 사건들을 직접 언급하면서 도덕성 문제를 거론했다. 이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 이슈가 오너들에게 있다는 것을 지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KCGI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가 상당히 낙후돼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과 그 일가가 소유한 지분율은 극히 적은데 이들의 갑질 행태 등으로 인해 회사 자체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어 문제라는 인식이다. KCGI는 "㈜한진칼은 ESG등급 평가에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연속하여 B이하를 받았다"며 "특히 지배구조 등급은 4년 연속 C등급(한국기업지배구조원 평가결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진그룹의 땅콩회항 사태가 있었을 당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809%(2014년 3분기)였으므로 자산 23조3000억원의 89%는 채권자의 몫"이라며 "주주의 몫 11%에 대해서도 조양호회장과 3남매 모두의 직간접 소유권은 13.7%(직접 10.0%, 간접 3.7%)로 총자산에 대한 실질적 소유권은 1.5%에 불과한데 1.5%만 주인인 가족의 일원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갑질의 심각성은 더욱 충격적"이라고 덧붙였다.

KCGI의 CIO를 맡고 있는 신민석 부대표가 지난 5월 작성한 '실적은 좋은데 오너가 문제' 보고서에는 한진그룹을 향한 인식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신 부대표는 보고서에서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진에어 면허 취소 우려로 주가는 약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에도 오너의 안일한 대응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으며, 오너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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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밸류한진 홈페이지(http://www.valuehanjin.com/)

국내 기업 중에서 저평가의 원인이 기업 자체의 실적보다는 오너가에 있다고 판단했다면 이는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으로는 제격이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한진그룹의 경우 땅콩회항 등 오너가의 갑질로 인해 여론이 극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행동주의 펀드에게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 투자는 아직 활성화 돼 있지 않아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자칫 지배구조가 불안정한 회사를 뒤흔들어 주가를 띄운 뒤 단기 차익만을 노리고 떠나는 악덕 펀드 논란에 휩싸일수도 있다. 따라서 KCGI로서는 투자의 명분과 당위성을 얻기에 유리한 전략적 자산으로 사회적 공분을 산 한진그룹을 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게다가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의미 있는 지분을 취득할 만한 규모의 한진그룹이 제격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단순한 지배구조로 한진칼이 모든 지배구조의 상단에 위치해 있다. 대한항공 등을 보유해 국가 기간 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상당히 비중 있는 그룹이지만 1000억 원대 재원만 있으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상당수는 적은 재원으로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할 수 있을 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취약한 곳이 많다"며 "한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항공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 관련 제약이 많아 웬만한 대기업이나 펀드가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강성부 대표는 과거 크레딧애널리스트 시절부터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분석에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실제로 애널리스트를 접고 PE업계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궁극적인 큰 뜻은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독립 PE를 설립해 적은 재원으로 여론의 응원을 받으며 승부를 보기 가장 적합한 기업이 바로 '한진그룹'이었을 것이란 것이 전반적인 업계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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