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의 선제적 결단…지배구조 모범생 탄생 [동원그룹 세대교체]①2001년 지주사 전환·2003년 계열분리…경영권 분쟁·금산분리 이슈 '해소'
박상희 기자공개 2019-04-29 12:30:19
[편집자주]
약 20여 년 전인 2001년 선제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이 있다. 2003년엔 계열분리를 통해 경영권 승계도 마무리했다. '참치왕국' 동원그룹 이야기다. 1969년 설립 이후 동원그룹 성장 신화를 써 온 김재철 회장은 계열분리 16년 뒤 창립 50주년을 맞아 퇴진했다. 경영권 분쟁이나 후계구도를 둘러싼 잡음은 없었다. 2000년대 초반 지주사 전환과 계열분리를 마무리 한 덕분이다. 동원그룹의 지배구조 변곡점과 남은 과제들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4월 24일 17: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양홀딩스(2011년), 샘표(2016년), 크라운해태홀딩스(2017년), 오리온홀딩스(2017년), 매일홀딩스(2017년) 등 2010년대 들어 식품업계 지주사 전환이 붐을 이뤘다. 동원그룹은 이보다 훨씬 앞선 2001년 지주사 체제를 갖췄다.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지주사를 출범시킨 LG그룹도 200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것을 감안하면 중견기업이었던 동원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얼마나 선제적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비단 지주사 전환뿐만이 아니다. 2003년 식품회사와 금융회사 간 계열분리를 단행했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 부회장이 금융 계열사를,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이 식품 계열사를 맡도록 했다. 조속한 계열분리를 통해 경영권 분쟁의 씨앗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다. 유수 대기업들은 2~3세대에 이르러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며 흑역사를 썼다. 동원그룹 창업자 김재철 회장(사진)의 지배구조 변화 결단은 국내 재계에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외환위기 거치며 선진 지배구조 정착
동원그룹은 1969년 4월 16일 서울 명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3명과 원양어선 1척으로 사업을 시작한 동원산업이 모태가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현황에 따르면 계열분리가 이뤄진 2003년 기준 동원그룹 계열사 수는 17개, 자산규모는 2조3880억원 수준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자산규모가 7조9820억원으로 8조원에 육박한다. 지주사 전환과 계열분리를 통해 지배구조를 정비한 뒤 오롯이 기업 경영에만 집중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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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부분 대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동원그룹의 지배구조 역사 역시 국내외 경제 환경과 무관치 않았다. 동원그룹은 1996년 공식적으로 그룹 체제를 갖췄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는 등 경제적 성취에 대해 축배를 들던 시기였다. 이듬해 말 한국은 외환위기 환란 속에 IMF(국제금융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여기저기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문어발' 식 경영 확장, 부채의존형 경영, 상호·순환출자형 구조 등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동원그룹은 선제적으로 지주사 전환에 나섰다. 금융당국의 압박도, 지배구조를 바꿔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로지 지배구조를 선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김 회장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동원그룹은 2000년 11월 모태인 동원산업 식품사업본부를 분할해 동원F&B를 설립했다. 2001년 4월 김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가 계열사 주식을 현물출자 해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세운 후 동원산업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지배구조 정점으로 하는 지주사 체제가 완성됐다.
그룹의 모태기업을 분할해 지주사를 설립하고 이후 계열사 주식 현물출자를 통해 지주사 체제로 편입시키는 방법은 국내 대기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현재도 자주 이용하는 방식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김 회장의 선구안과 선구자적인 결단이 돋보인다.
지주사 전환과 함께 수직계열화 작업도 단행됐다. 동원그룹은 상호·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 계열사 출자구조 역시 오랜 시간 큰 변화가 없었다. M&A(인수합병)을 통해 계열사 수가 늘어났을 뿐 각 계열사에 대한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지분율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이 역시 동원그룹 지배구조의 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16년 전에 이뤄진 계열분리…경영권 분쟁 싹을 자르다
김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비단 지주사 전환에 그치지 않았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지 2년 만인 2003년 계열분리에 나섰다. 2003년 현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전신인 동원금융지주를 세워 금융그룹의 계열분리를 단행했다. 동원증권 등 금융계열사를 동원금융지주로 편입시켰다. 김 회장의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에 오른 뒤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출범시켰다.
김 회장이 금융계열사 수장으로 장남을 낙점한 것은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김남구 부회장은 1987년 동원산업으로 입사했지만 얼마 안가 동원증권으로 이동했다.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계열분리와 함께 금융지주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김남구 부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지분 20.23%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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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계열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차남 김남정 부회장이 물려받았다. 김남정 부회장은 현재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지분 67.9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원엔터프라이즈가 제출한 가장 오래된 사업보고서인 2007년 주주현황과 최근 대주주 현황은 거의 변화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남정 부회장이 최대주주 자리를, 김 회장이 24.23%의 지분율로 개인 2대주주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주사 전환 이래 동원그룹의 오너십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회장의 계열분리 결단은 금산분리 기조와도 맞물린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것으로, 특히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강력히 규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금융 계열사가 산업자본 아래 있다면 문제의 소지가 크다. 김 회장은 계열분리를 통해 금산분리 이슈를 해결했다.
김 회장의 계열분리 결단은 단순히 금산분리 이슈 해소에만 있지 않았다. 장남은 금융, 차남은 식품제조로 후계 구도를 분명히 했다. 1935년 생인 김 회장이 계열분리를 단행할 당시 나이는 70대였다. 1963년 생인 김남구 부회장은 42세의 나이로 금융지주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김남정 부회장은 당시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진 않았다. 다만 김 회장은 식품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 최대주주 자리를 김남정 부회장에게 넘기며 경영권 승계 마침표를 찍었다.
업계 관계자는 "자수성가한 대기업 회장일수록 권력 이양을 최대한 미루며 본인이 끝까지 경영을 책임지려 하는 태도가 강하다"면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국내 재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일찍 지주사 전환과 계열 분리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마치는 등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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