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정책 지원 효과 점검]채안펀드, 시장 심리 개선 특효…회복 기반 다졌다②투입액 대비 효과 상당, 우량채 수요 가늠자…낙수효과 미미, 속도전 '글쎄'
피혜림 기자공개 2020-09-04 13:55:42
[편집자주]
코로나 19 사태가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만큼은 이렇다 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크게 개선되며 공모채 미매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전방위적 정부 지원 정책이 '안전판' 노릇을 하면서 투자심리 개선에 힘을 보탰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책 별 실효성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지원책의 자금 소진 현황을 점검하고 시장에 미친 영향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9월 02일 14: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의 위력은 상당했다. 4월 1일 가동 이후 AA급 크레딧물 시장은 빠르게 회복됐다. 등을 돌렸던 기관 투자자들은 채안펀드의 등장과 함께 채권 '사자 행렬'에 동참했다.정부가 시장 안정에 힘을 실었다는 시그널만으로도 우량물을 완판 시키기엔 충분했다. 가동 두달여 만엔 가산금리(스프레드) 축소세가 뚜렷해져 도리어 채안펀드가 물량을 받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 심리 회복의 신호탄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AA급 우량 크레딧물로 편입 대상을 한정시킨 탓에 가장 자금 확보가 절실했던 A급 이하는 적시에 수혜를 받을 수 없었다. 우량채 시장에 퍼진 온기가 A급 이하 크레딧물로 퍼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원 형태와 매입 가격 여건 상 스프레드 안정화 속도가 더뎠다는 지적도 나온다. 적정가격 매입만으로는 스프레드 안정화 속도를 높이는 게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의 등장으로 지원 정책 기관이 투자 경합을 벌이는 듯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할 분리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투심 안정 기반, '사자 행렬' 이끌어…미배정 우려 해소
삼성증권에 따르면 4월 1일 가동 이후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집행한 투자 규모는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이 중 메리츠캐피탈과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사채(여전채) 편입 물량을 제외하면 1조 3000억원 가량이 일반 회사채(SB) 시장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조성금인 3조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정부에서 밝힌 정책 규모(최대 20조원) 대비 집행액은 미미했지만 효과는 상당했다. 코로나19 사태로 3월 중순 이후 회사채 자금 모집이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지만 채안펀드 등장 후 AA급 우량채는 무난히 청약금을 모았다. 3월 채안펀드 조성 소식에 일부 발행사는 가동 시기에 맞춰 수요예측 일정을 미루기도 했다.
기관들은 채안펀드의 참여 여부에 따라 수요예측 청약을 결정했다. 채안펀드 개시 후 첫 AA급 수요예측이었던 롯데푸드 딜에는 모집액(700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1400억원의 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채안펀드가 300억원의 주문을 넣어 수요를 뒷받침한 결과였다. 코로나19발 금융불안으로 하나은행 후순위채(AA0)와 포스파워(AA-) 등의 우량채조차 수요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분위기를 일시에 반전시킨 것이다.
가동 첫 달인 올 4월 채안펀드가 수요예측에 참여한 금액은 약 6700억원에 달했다. 지원 대상인 만기 3년 이내 AA급 차환물 모집액(2억 1600억원) 중 30% 가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채안펀드의 경우 매입대상 물량의 50% 이상은 담을 수 없다.
채안펀드와 함께 미배정 우려는 급감했다. 호텔신라(AA0)와 롯데쇼핑(AA0) 등 크레딧 우려가 불거진 일부 발행사는 채안펀드 참여에도 미배정이 발생했지만 대부분의 이슈어가 무난히 청약금을 마련했다. 채안펀드가 절반에 가까운 모집금액을 책임져 경쟁률을 높인 덕에 증액 발행을 결정한 기업도 속출했다.
4월 중순에 접어들자 채안펀드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AA급 우량채 물량이 소화되기 시작했다. 영원무역과 현대자동차, LS일렉트릭 등 채안펀드가 주문을 넣지 않은 이슈어도 수요예측에서 자금 마련에 성공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채안펀드의 등장에 기관들도 채안펀드가 어느 딜에 참여하는 지 등을 확인하며 투자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며 "실제 자금 집행 정책이라기보단 시장 안정화 역할이 주력이었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프레드 축소세 더뎌, 속도전 미흡
채안펀드발 수요 회복으로 스프레드 급등을 막는 효과도 상당했다. 4월 AA급 3년물 채권 발행 스프레드는 민평 대비 최대 60bp까지 뛰어올랐으나 차츰 한자리대를 달성하는 이슈어가 등장했다. 4월 28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포스코에너지(AA-)가 3년물 스프레드를 민평 대비 5bp 높은 수준으로 결정한 데 이어 현대자동차는 민평 수준(par)으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수석 연구위원은 "금융시장 불안이 높아지자 선호 채권과 비선호 채권간 수요 격차가 심화됐다"며 "채안펀드는 시장 선호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편입 대상 채권 수요예측에 들어와 가격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스프레드 회복 속도 측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4월 발행사들은 채안펀드 참여에도 3년물 기준 민평금리보다 최대 60bp 가량 높은 발행 스프레드를 감수해야 했다. 벌어진 스프레드 격차는 6월에 접어들어서야 일정 부분 해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스프레드 축소 속도로만 살펴봤을 때 두달여에 걸친 시일은 예상보다 더뎠다는 설명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시장 가격 수준의 매입이 이같은 아쉬움을 남겼다고 분석했다. 채안펀드의 경우 시장가격 미만으로는 채권 투자가 불가능하다. 발행시장 개입 형태로 지원에 나선 데다 수요예측 참여 가격이 시장금리 수준 이상으로 제한되다 보니 발행 스프레드를 축소되는 데에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량채 중심 한계…지원정책 역할 분담 필요성 부상
AA급 우량채 중심의 지원으로 정작 자금이 절실한 A급 이하 이슈어는 적시에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발행사 펀더멘탈이 강조되는 회사채 시장 특성 상 금융 불안이 고조될 경우 자금 조달이 가장 어려워지는 곳은 A급 이하 크레딧물이다. 채안펀드로 금융 불안 직후 우량채가 빠르게 수혜를 누린 것과 달리, 7월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가동 전까지 A급 이하물은 지원 공백이 있었다는 점에서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SPV의 등장 이후 지원정책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채안펀드와 SPV간 투자 대상이 일부 겹치는 탓에 중복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달 에쓰오일 회사채 수요예측에 채안펀드와 SPV가 각각 600억원, 700억원 수준의 주문을 넣었다. 채안펀드는 민평 대비 1bp 높은 금리에, SPV는 개별 민평 수준의 금리에 응찰 의사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채안펀드와 SPV의 운용 주체가 다르다보니 동일한 수요예측에 청약금과 제시 금리 등을 다르게 설정해 주문을 넣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지원정책 기구가 경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기능을 분리하는 등의 효율화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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