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8월 03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과거 중세시대엔 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의 둘레를 파 구덩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해자라고 부른다. 워렌버핏은 기업투자 결정 과정에 이 개념을 적용시켜 '경제적 해자'라고 명명했다. 후발주자들이 쉽게 따라하거나 복제하기 어려울 만큼의 기술격차, 일종의 진입장벽을 의미한다.LG디스플레이 역시 경제적 해자를 갖춘 기업이었다. 90년대부터 삼성디스플레이와 함께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명실상부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거대 유통망에 액정표시장치(LCD)를 실어 현지 시장을 장악했다. 중국도 가만있진 않았다. 2000년대 초부터 죽어라 쫒아왔다. BOE는 국내 LCD 업체인 현대전자 인력을 대거 흡수하며 기술을 추격했다.
결국 10년 후엔 전세가 역전됐다. 2010년대 초부터 TV용 LCD생산 1위국은 한국이 아닌 중국이 됐다. LG디스플레이는 치킨게임을 불사하다가 결국 전략을 바꿨다. LCD가 아닌 막대한 투자비가 투입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선제적으로 깃발을 꽂아 승부를 보기로 했다. 또 다른 경제적 해자다.
지난주 LG디스플레이의 컨퍼런스콜을 청취하다가 의문이 생겼다. 현재 OLED 기술력이 어느정도의 기술격차를 벌여놓은 상태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했다. 중국의 대형 OLED 패널 생산능력을 내년 1000만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만 있을 뿐 인력유출 방지를 위한 방책은 없었다.
OLED도 LCD처럼 따라잡히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더군다나 전진기지인 중국은 LCD의 악몽이 서려있는 곳이다. 최근 중국업체들은 OLED DDI를 생산하는 매그나칩 인수를 통해 기술 습득을 시도하고 있다. 편법 인력이동도 비일비재하다. 이미 모바일 소형쪽에선 BOE가 한국을 턱끝까지 따라왔다.
LG디스플레이에 OLED 기술력 보호전략에 대해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다소 허술했다. "OLED가 LCD보다 난이도가 높고 노하우가 필요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기술자가 돌고 돌다보니 언젠가는 중국도 쫓아올 것이고 향후 베트남 등 생산기지 다변화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LG디스플레이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IT용 LCD패널 경쟁력도 불명확하긴 마찬가지다. 컨콜에서 한 애널리스트가 "LG디스플레이만의 IT용 LCD차별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CFO는 "중국이나 대만 등의 경우 개발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짧고도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기업의 컨콜은 주주들과의 소통 창구다. 다만 이번 LG디스플레이 컨콜은 경제적 해자를 찾고 있는 투자자들의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진 못했던 듯 싶다. OLED를 해자로 활용하려면 중국시장의 서플라인 체인에 끼어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핵심기술 유지 능력이다. OLED 보안과 더불어 연구개발 등 투자 확대 계획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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