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체계 이번엔 바꿀 수 있을까…현실적 과제는 산더미 [금융위·금감원 어디로]⑥팬데믹 금융지원 사후 대응·가계대출·국제적 사태 '첩첩산중'…정치적 의지가 관건
김현정 기자공개 2022-03-07 07:59:18
[편집자주]
금융감독체계에 정답이 있을까. 기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각 방안마다 장단점이 다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쟁은 금융의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다. 백년대계까진 아니더라도 향후 20년 이상은 유지할 수 있는 완성형 금융감독 모델이 구축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금융감독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앞으로 금융감독체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더벨이 진단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04일 08시1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14년간 이어져 왔다. 또 한번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도 개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년간 논란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필수적인 과제란 얘기지만 거꾸로 그만큼 풀기 힘들다는 방증도 된다.무엇보다 현실적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선이 끝난 뒤 코로나19 사후조치, 부동산 대책, 가계부채 문제, 미국 금리 인상. 국제적 분쟁 등 현안이 급선무다. 현실적 과제를 풀다 보면 감독체계 개편은 저절로 뒤로 밀릴 가능성도 크다.
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부처 간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처간 힘을 합쳐야하는 위기 상황에선 칼을 대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자칫 금융권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 있는 논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정치적 의지를 갖느냐가 감독체계 개편의 가장 큰 열쇠다.
◇코로나19 금융 지원·금리인상·가계대출 등 문제 산적...개편 '뒷전 가능성'
최근 금융 분야 학자 15인으로 구성된 '금융감독 개혁을 촉구하는 전문가 모임'이 금융분야 학자 312명의 서명안을 들고 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과 야당에서도 여러 경제·금융 정책과 더불어 금융감독 체계와 관련된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다만 14년간 그랬듯 다음 정부에서도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금융 시장에 직면한 여러 현실적 문제들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고위 인사는 사견을 전제로 “현재 금융 상황은 매우 어렵다”라며 “금융위와 금감원이 힘을 합쳐서 당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지, 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논쟁을 벌일 수 있는 한가로운 시기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금융권으로 번지고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경영여건이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금융권의 상환유예 및 대출만기연장 조치가 이번에 네 번째 연장됐다.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전 금융권이 지원한 만기연장 총액은 270조원, 원금 상환유예는 14조3000억원, 이자 상환유예는 2400억원이다. 총 284조4000억원 규모다. 수백조의 대출 폭탄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금융권이 당면한 문제는 팬데믹 사태에 대한 후속 처치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금리 인상과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 등 긴축 정책을 단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추가 기준금리 상승을 예상 중이다. 한국은행은 향후 2~3차례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부동산 대책과 가계부채 문제 역시 차기 정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이슈다. 경제 정책을 넘어 금융권에서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
최근엔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가세했다. 만일 분쟁이 더 격화된다면 서방이 경제 제재 수위를 상당히 높일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교역의 위축으로 국내 생산 및 수출이 영향을 받아 금융권에도 파장이 밀려올 것이다.
이런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자칫 금융권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두고 전문가, 이해당사자들 간 의견이 저마다 다른 만큼 중요한 시기 불필요한 논쟁만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과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블랙홀’에 빗댄 적이 있다. 사실상 ‘정답’이 없는 문제로 논의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비용과 대가를 불러오는 거대한 블랙홀 같다는 얘기다. 당시 그는 금융당국이 금융개혁과 실물경제에 집중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전 금감원장은 “지금의 금융위는 14년간 존속해왔기 때문에 다시 기재부로 들어가는 것은 부처가 해체되는 꼴이기 때문에 반발이 심할 것”이라며 “해당 이슈는 조직개편의 방향성을 잡는 문제라기보다, 서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주장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부처간 갈등으로 시기를 보낸다면 위기관리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게 선결과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또한 새 정부가 들어선 뒤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지방선거가 예정돼다는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부조직 개편의 경우 동력을 잃게 될 여지도 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실익 크지 않다는 목소리도...금융권은 난색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정권 교체 시기마다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 개편된 안을 놓고 같은 정부 중반 때 이미 손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가 한 차례 강타한 뒤 현행 체계의 문제점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말미에서도 한차례 논의가 있었다.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사태 등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서 금융당국이 적절한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커진 데다 주택매매 활성화 정책으로 인한 가계부채 확대의 책임이 금융위로 돌아간 탓이었다.
당시에도 윤석헌 전 숭실대 교수(이후 금감원장)과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후 공정거래위원장), 원승연 명지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 등이 개편을 주장했다.
윤창현 당시 서울시립대 교수(이후 국민의힘 의원)는 '사과와 오렌지 중 뭐가 좋은지를 고르는 것 것처럼 선호하는 체계가 다를 뿐'이라며 금융감독 체계의 우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고수했던 점도 눈에 띈다.
수년 동안 해당 논의가 번번이 무산된 건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였다. 특히 ‘이전 정부 색깔 지우기’가 주된 목적 아니겠냐는 시각도 많았던 만큼 혼란과 비효율만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자칫 감독기구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피감기관 및 주주가 있는 현재 금융사들 입장에서 감독기구가 많아지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다”며 “사실상 현재 정책과 감독의 분리 문제는 시중은행 입장에서 그리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감독 체계 개편은 14년간 이어온 난제다. 이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감독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정치적 의지를 보이는 것이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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