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보여준 네패스, 'FO-PLP' 양산 기술 ASE 보다 선점 [OSAT 보고서]④글로벌 팹리스 수주까지 '기술력' 입증…PMIC→AP 등 다각화 과제
김혜란 기자공개 2022-08-08 10:53:12
[편집자주]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서 패키징·테스트 외주기업(OSAT)은 유독 존재감이 약했다. 대만 ASE, 미국 앰코(AMKOR), 중국 스태츠칩팩(JCET) 등이 장악한 세계 OSAT 시장을 넘볼만한 기술도, 규모의 경제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국가적 과제인 비메모리 육성은 후공정(패키징·테스트) 생태계가 뒷받침할 때 풀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성능을 좌우할 최첨단 패키징 기술을 어느 국가가 선점하느냐가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전쟁의 승패를 가를 '키'가 됐다. 취약한 후공정 생태계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삼성전자부터 OSAT 기업을 만나 현주소를 짚어보고 의견을 들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04일 15: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반도체 초강대국 도약의 의지를 담아 개최한 'K-반도체 전략 보고'에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네 곳이 초대됐다. 종합반도체기업(IDM)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리벨리온, 그리고 나머지 한자리는 반도체 패키지·테스트 외주기업(OSAT) 네패스가 차지했다.비메모리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강국의 꿈을 실현하는 데 OSAT의 역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대 축 못지않게 중요하단 의미다. 그런데 네패스는 국내 1위 OSAT도 아니고 세계 시장점유율은 23위(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 2021년 발표 기준)에 그친다.
그럼에도 네패스가 국내 OSAT 대표주자로 주목받은 것은 네패스 그룹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첨단 패키징 기술력 때문이다. 네패스는 세계 1위 OSAT 대만 ASE보다 먼저 팬아웃(FO·Fan-out) 패널레벨패키지(PLP) 양산 기술을 확보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나 삼성전자보다도 앞선 것이다.
네패스의 작년 한 해 매출 규모는 4000억원대, ASE는 12조원대로 사실 글로벌 무대에서 맞붙기엔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나 최첨단 기술을 선점한 네패스가 한계를 뛰어넘는다면 한국 OSAT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후공정 불모지에서,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이 이뤄낸 성과에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네패스의 진화, 세계적 팹리스 수주 성공
네패스는 패키징부터 테스트까지 후공정 전 과정을 '턴키(일괄수주계약)'로 제공하되 각각 자회사 네패스라웨(패키징)와 네패스아크(테스트)가 나눠 담당하고 있다. 모회사 네패스는 범핑(Bumping), 팬인(Fan-in) 웨이퍼레벨패키지(WLP) 등 패키징을, 네패스라웨는 이보다 진화한 기술인 팬아웃 패키징 공정을 맡는 식으로 이원화돼 있다.
이들 자회사는 원래 한 몸이었으나 2019년 테스트사업부가, 그 이듬해엔 FO-PLP사업부가 떨어져나왔다. 네패스는 두 사업부 물적분할 과정에서 대규모 재무적 투자자(FI) 자금을 유치했다.
삼성전자 기술총괄 제조기술담당 사장 출신 김재욱 대표가 이끄는 반도체 전문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로 유명한 BNW인베스트먼트가 네패스아크와 네패스라웨 두 곳 모두 투자자로 참여해 주목받기도 했다. FI 유치로 성장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투자금으로 충북 괴산에 세계 최초의 FO-PLP 전용 팹(Fab·공장) 건설을 지난해 마무리 지은 것이다. 지난해 초엔 국내 최고 반도체 전문가 정칠희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을 회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ASE 등 글로벌 OSAT들도 FO-PLP 기술을 개발 중이나 실제 양산까지 성공한 곳은 현재까진 네패스가 유일하다. ASE도 지금은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WLP) 양산까지만 가능하다. 대만 기업이 장악한 파운드리와 후공정 시장에 균열을 내려면 남다른 경쟁력이 필요했고 네패스는 차세대 PLP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2000년대 초반, 기존 와이어 본딩(Wire Bonding) 대신 소형·고집적 패키징을 구현할
솔더볼(Solder Ball)이라는 범프(Bump)를 이용한 범핑 공정 도입도 국내 OSAT 중 네패스가 주도했었다. 와이어 본딩은 반도체 칩과 기판 사이를 금과 구리 등으로 만든 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라면, 범핑은 웨이퍼 위에 신호 전달 역할을 하는 범프를 형성해 바로 기판과 접촉해 패키징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네패스 관계자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주요 원천기술을 국산화한다는 게 네패스를 지탱하는 철학"이라고 말했다.
◇FO-PLP는 어떤 기술
패키징은 전공정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보호하는 물질을 씌우고 입출력 단자(IO, Input Output)를 연결하는 후공정 작업 중 하나다. 과거엔 칩 안에 솔더볼을 모두 넣는 팬인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전공정 미세화로 반도체 칩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IO를 칩 내에서 다 소화하지 못할 때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로 팬아웃이 등장했다.
FO는 IO를 칩 밖까지 배치해 IO 수를 늘리는 방식을 말한다. IO를 보다 촘촘히 배치하기 때문에 칩의 고성능과 경박단소(가볍고 얇고 짧고 작음)를 구현할 수 있다. 차세대 3차원(3D) 패키징, 시스템인패키지(SiP·System in Package) 등 여러 이종 칩을 결합할 땐 이같이 고성능·고집적화를 가능하게 하는 FO 기술이 유용할 수밖에 없다.
FO-WLP와 FO-PLP는 뭐가 다를까. FO-WLP에서 효율성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 바로 FO-PLP다. WLP는 지름 300mm의 원형 웨이퍼(반도체 원판)에서 패키징하기 때문에 웨이퍼 일부가 버려진다. 하지만 PLP는 가로·세로 600㎜ 사각형 패널에 칩을 옮기기 때문에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패키징할 수 있다. 생산단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훨씬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니 고객사 입장에선 FO-WLP보다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FO-PLP의 경우 공정 난이도가 높아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 수익성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테스트 부문인 네패스아크를 제외하고 네패스와 네패스라웨 모두 적자를 내고 있다. 네패스라웨는 연결회계기준 지난해 603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주문 들어오는 것 기준으로 네패스라웨는 4분기부터 BEP(손익분기점) 이상 올라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세계 최첨단 기술을 선점한 네패스라웨가 턴어라운드(흑자전환)까지 성공하면 업계에서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MIC 넘어 AP도…적용처 확대 과제
현재 네패스라웨의 FO-PLP 캐파(CAPA, 생산능력)는 월 3000장의 패널 생산이 가능한 수준이다. PLP로 생산하면 생산성이 기존 웨이퍼 대비 5배가량 더 높단 점을 감안, 원형 웨이퍼로 환산하면 월 1만5000장 수준이다. 네패스라웨는 올해 말까지 FO-PLP 캐파를 월 5000장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네패스 관계자는 "20년간 해온 8인치(200㎜) 팬인 기술의 경우 현재 매월 생산가능한 물량이 월 6만5000장 수준(웨이퍼 기준)"이라며 "팬아웃의 경우 3년 만에 월 2만5000장 규모로 캐파가 늘어났으니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O 시장은 이제 초기 단계다. 네패스같이 작지만 세계 시장에 내세울 만한 기술 경쟁력을 선점한 중견기업에도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 과제는 FO-PLP 적용처를 다양화하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고객사를 더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는 한 글로벌 팹리스의 전력관리반도체(PMIC)를 FO-PLP로 패키징해 납품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더 고부가가치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으로 저변을 넓혀야 한다. 단일 제품인 PMIC만 생산해선 SiP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국내 OSAT 기업들은 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물량을 받아 성장해왔다"며 "이런 생태계에서 글로벌 팹리스 수주에 성공했단 건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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