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장벽 높은 신기술 확보, 세계 시장 뚫는다" [OSAT 보고서]⑤김용수 네패스 기획조정실 전무 인터뷰
김혜란 기자공개 2022-08-09 10:49:34
[편집자주]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서 패키징·테스트 외주기업(OSAT)은 유독 존재감이 약했다. 대만 ASE, 미국 앰코(AMKOR), 중국 스태츠칩팩(JCET) 등이 장악한 세계 OSAT 시장을 넘볼만한 기술도, 규모의 경제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국가적 과제인 비메모리 육성은 후공정(패키징·테스트) 생태계가 뒷받침할 때 풀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성능을 좌우할 최첨단 패키징 기술을 어느 국가가 선점하느냐가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전쟁의 승패를 가를 '키'가 됐다. 취약한 후공정 생태계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삼성전자부터 OSAT 기업을 만나 현주소를 짚어보고 의견을 들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05일 13: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만 ASE 같은 세계적 반도체 패키지·테스트 외주기업(OSAT)이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서도 배출될 수 있을까. 오랜 기간 대만 정부와 자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한 ASE를 단번에 따라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후공정 불모지'에서도 국내 OSAT는 조금씩 진화해왔다. 메모리 위주에서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테스트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세계 시장에 나설 강력한 무기가 될 최첨단 패키징 기술력을 확보하며 도약을 준비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네패스다.
네패스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PLP) 양산 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수주까지 따냈다. 네패스의 사업 전략 등을 책임지는 기획조정실장 김용수 전무(사진)를 서울 서초구 네패스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전무는 "매출 10조원이 넘는 ASE의 포트폴리오 중 첨단패키징은 20%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며 "반면 네패스라웨는 첨단패키징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전통적인 패키징 방식인 와이어 본딩(Wire Bonding)이 주류고, 와이어본딩 방식 외 범프(Bump)를 이용한 범핑 공정 등 첨단패키징은 아직 시장 규모가 10% 정도로 작다. 네패스라웨가 시장점유율을 단번에 확 늘리기란 어렵단 얘기다.
그러나 반도체 후공정 기술 트렌드는 바뀌고 있다. 기술력으로 무장하고 미래를 준비해온 기업만이 때가 됐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김 전무는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는 원형 웨이퍼에서 바로 패키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부분이 생기지만, FO-PLP 공정은 12인치(300mm) 웨이퍼보다 훨씬 큰(가로와 세로 각각 600㎜) 사각형 패널에 옮겨서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훨씬 좋다"며 "고객사 입장에서도 결국 FO-PLP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초 기술 개발, 어떻게 가능했나
사실 팬아웃(FO)을 최초로 상용화한 건 TSMC다. FO-WLP 기술인 InFO(Intgrated Fan Out)를 내세워 2012년께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애플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물량을 뺏어오면서 FO 기술 위력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팬아웃 기술을 확보한 OSAT는 스태츠칩팩과 나니움, 네패스 정도였다. 다급해진 삼성전자는 이즈음부터 네패스와의 기술 공동 개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패스는 두 수 앞을 바라봤다. 김 전무는 "대만 ASE, 미국 앰코(AMKOR), 중국 스태츠칩팩(JCET) 등 글로벌 상위 기업들은 여전히 와이어본딩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며 "자체 분석 결과 ASE의 전체 매출 중 FO-WLP 비중은 20~30%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어 "네패스는 이미 ASE, 앰코가 장악한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지 않고 바로 FO-PLP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며 "성장성이 있고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을 타깃으로 해야 강자들 틈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아예 선진 기술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무는 네패스가 이번에 세계 최초로 FO-PLP 패키징 양산에 성공하면서 다른 OSAT들과의 기술적 격차를 2~3년 정도 벌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ASE 등 네패스보다 훨씬 규모가 큰 세계적 OSAT들이 아직 FO-PLP 양산 기술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김 전무는 "오랫동안 디스플레이 패널 사업을 해봤던 경험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네패스는 과거 액정표시장치(LCD) 터치스크린패널(TSP) 사업을 하며 대형 초박형 글라스에 초미세 패터닝을 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이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훈련한 덕분에 FO-PLP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네패스의 FO-PLP 공정개발은 기존 LCD TSP 관련 장비를 PLP 생산용으로 전환하는 데서 시작됐다.
◇성장의 조건…튼튼한 OSAT 토양 만들기
FO-WLP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FO-PLP 공정은 고객사에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 전무는 "팹리스의 개발자들이 와이어본딩보다 팬아웃으로 하는 게 성능을 구현하는데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면 어느 정도까진 높은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첨단패키징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첨단패키징 시장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네패스라웨는 한 글로벌 팹리스의 스마트폰용 전력관리반도체(PMIC)를 FO-PLP로 패키징해 납품하고 있다. PMIC는 주요 칩에 필요한 전력을 관리하는 반도체로 전자기기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에서는 통상 모뎀이나 AP 제조사가 PMIC를 같이 설계해 페어링해 퍼포먼스를 극대화한다.
네패스에 물량을 맡긴 세계적 팹리스도 글로벌 메이저 AP 브랜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PMIC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제적으로 최첨단 패키징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패스의 FO-PLP 수율 개선, 제조경쟁력 확보가 이뤄지면 향후 AP 물량까지 맡기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김 전무는 "FO-PLP의 경우 올해 초 패널 100장 정도 양산했는데, 6개월 만에 월 3000장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며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계적 팹리스로부터 기술력을 검증받았단 게 큰 성과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새로운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네패스의 진화는 국내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에도 기여한다. 팹리스는 파운드리와 OSAT를 각각 지정해 수주를 준다. 팹리스 입장에선 네패스에 후공정을 맡긴다면 파운드리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내 파운드리를 이용하는 게 물류비용 절감에 유리하다.
김 전무는 또 OSAT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정부의 인재 양성과 투자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기술 도입해 수익이 창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정부가 시설 투자 지원을 일회성으로 끝내지 말고 최소 세 번은 해줘야 한다"며 "패키징 전문 인력도 지역별로 특화해 균형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충북을 후공정 특화단지로 키우고 있는 만큼, 충북 지역 대학에서 패키징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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