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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어차피 꿔야할 악몽이라면 [thebell note]

허인혜 기자공개 2022-10-25 07:30:42

이 기사는 2022년 10월 24일 08: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3조원의 충당금을 쌓는다. 3분기 사상최대 실적을 전망했던 시장이 당황할 만큼 큰 금액이다. 이른바 세타2 엔진 악몽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다. 현대차와 기아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하지만 현대차의 '악몽'은 꿔야만 하는 꿈이었다. 세타2 엔진 보상은 현대차의 약속이다. 세타2 엔진에 떨림과 시동꺼짐 등의 결함이 발생하자 2019년 한국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엔진 평생보증제도를 약속했다. 3조원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내놓았어야 하는 비용이다.

저축하기 좋은 시기를 묻는다면 잘 벌었을 때가 아닐까. 어려운 시기 빚을 내 저금통을 채우기보다 감당 가능할 때 돈을 비축하는 편이 현명하다. 현대차는 리스크를 안고 가기보다 잘 벌었을 때 잘 털어내는 쪽을 택했다. 적기에 충당금을 잘 쌓는 일도 용기고, 현대차에게 적기라면 실적 최대치가 점쳐졌던 지금이 적절하다.

충당금 인식 전 현대차와 기아의 예상 실적은 각각 3조원과 2조2340억원이었다. 현대차는 분기기준 처음으로 3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목전에 뒀다. 기아도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기 전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과실을 두고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3조원의 충당금 확충이 제동걸기보다 정의선 회장의 결단으로 보이는 이유다. 정 회장은 취임 초부터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품질은 목숨처럼'이라는 선언은 정 회장의 의지를 대변한다.

현대차에게 품질 문제는 더 이상 현안이 아니다. 결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미국 JD파워의 2022년 내구품질조사에서 기아가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가 3위다. 과거 성과를 보면 발전은 더 눈에 띈다. 90년대 중반 현대차의 순위는 꼴찌를 겨우 면했다. 34개 브랜드 중 33위였다. 96년과 97년에도 꼴찌 바로 윗단계에 머물렀다.

옛 잘못을 무를 수는 없다. 최선은 만족할 만한 보상이다. 더 중요한 건 과오를 잊지 않는 것이다. 현대차는 충당금 확대 배경을 두고 '전례 없는 평생 보증정책을 제공했지만 이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솔직한 인정은 품질을 위해서는 자존심도 버리겠다는 정 회장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차의 체력은 세타2 엔진 문제가 불거졌던 2015년과 비교하면 훨씬 강해졌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시대로 대전환이 이뤄진 점도 기회다. 세타2 엔진 부담감은 잦아들 것이다. 리콜 비용을 감안해도 추세적인 이익률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의 주가는 충당금 계획을 발표하기 전(16만7000원)의 가치를 유지했다. 투자자들이 일회성 비용보다 호실적에 눈을 돌리며 장중 가격이 17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3조원이 현대차의 엔진을 끌까'라는 질문에 주가가 대신 답해준 셈이다. 이번 충당금 비축으로 적어도 2~3년간의 불확실성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차피 꿔야할 악몽이라면, 체력이 튼튼한 지금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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