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욱의 럭스틸]'비싸서 안 팔린' 컬러강판, 더 비싸게 만든 사연은①국내 첫 컬러강판 내놓은 유니온스틸, 전공 살린 장세욱…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
허인혜 기자공개 2023-04-20 07:20:35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18일 16: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장교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군 생활만 10년을 하고 전역해 동국제강에 합류했다. 군인 출신의 정제된 성품, 달리 말하면 딱딱함이 남아있을 법 했지만 첫 경영행보는 파격 연속이었다. 현장 공장을 예고 없이 자주 찾았는데 미리 이야기를 하면 손님맞이 준비를 할 것을 염려해 깜짝 방문을 이어갔다는 후문이다.열린 경영은 그가 '내 새끼'라고 불렀던 럭스틸(LUXTEEL) 런칭 행사에서도 엿보였다. 장 부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프리젠테이션을 소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럭스틸이 탄생한 2011년에는 철강업계가 더 보수적이었던 시대다. 오너 일가인 장 부회장의 발표에 놀란 이들이 많았다.
또 하나의 파격은 런칭 행사에 모객한 청중의 면면이었다. 장 부회장은 브랜드 공개 행사에 언론뿐 아니라 건축가와 공예 예술가, 디자이너를 초대했다. 동국제강의 군인같은 이미지가 부드럽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장 부회장의 이미지 변신처럼 럭스틸도 동국제강의 고급화·부드러움을 이끌었다. 동국제강의 정체성을 넓힌 럭스틸은 언제부터, 왜 만들어졌을까.
럭스틸의 출발은 유니온스틸의 컬러강판이다. 컬러강판의 이미지가 삼성전자 비스포크나 LG전자의 오브제 컬렉션 등으로 세련돼 최근의 사업 같지만 예상보다 오래 전부터 생산됐다. 역사만 50년이다.
유니온스틸의 전신은 옛 국제그룹 소속의 연합철강이다. 연합철강은 1967년 국내 최초로 냉연 제품을 내놨다. 이후 냉연 파트에 천착했는데 냉연강판에 색상을 입힌 컬러강판을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72년이다. 연합철강은 1985년 동국제강 계열사로 편입됐다.
유니온스틸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 장세주 회장이 이사회에 오른 2004년이다. 본래 미국 현지법인이 사용하던 사명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한다는 의미였다. 첫 생산했던 때부터 동국제강과 합병한 2015년까지 컬러강판에 집중했다. 럭스틸을 내놓기 전까지도 시장에 풀린 컬러강판 넷 중 하나는 유니온스틸 제품이었다.
합병 후에도 컬러강판 부문의 주역은 유니온스틸 출신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세욱 부회장이다. 장 부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유니온스틸의 포트폴리오 확대를 노렸다. 컬러강판이 본래도 유니온스틸의 전공이었다보니 여기에 '알파'를 더해야했다. 장 부회장이 찾은 답지는 고급화다.
역설적으로 국산 컬러강판들이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컬러강판은 공급과잉 시장이었다. 국내에서는 유니온스틸과 동부제철, 포스코강판이 맞붙었다. 연산 규모가 40만톤(t) 수준으로 비슷했고 이외에도 연산 5만~20만t 수준의 중견기업들이 경쟁했다.
해외 기업들의 침투도 유니온스틸의 기를 꺾었다. 당시 국산 컬러강판들은 싼 값의 중국산 컬러강판에 맥을 못췄다. 2010년대 초의 기록을 살펴보면 국산 컬러강판의 톤당 단가가 중국보다 10만원 이상 비쌌다는 전언이다. 일본산 제품도 덩달아 가격을 낮췄다. 비싸서 못 팔았는데 더 비싸게 팔겠다는 전략이었다. 확실히 무언가가 달라도 달라야 했다.
럭스틸은 고급스러움·명품을 의미하는 럭셔리(luxury)와 스틸(steel)을 합해 만든 브랜드다. 지향점이 확실했다. 철강 제품으로서는 첫 브랜드 마케팅이었다. 이후 포스코가 이노빌트를, 현대제철이 H core를, KG동부제철이 엑스톤 등을 내놓으면서 철강 제품의 브랜드화가 촉발됐다.
장 부회장이 찾은 명품 강판의 최우선 특징은 디자인이었다. 장 부회장은 2013년 국내 철강기업 중 처음으로 디자인팀을 꾸린다.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건물 내외관에 멋을 부리는 것도 흔치 않았고 백색가전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기다. 컬러강판의 제품군도 흰색과 아이보리색, 붉은색 등 단색으로 단조로웠다. 반발하는 쪽의 주장은 강판에 디자인까지 고려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제품군이 확대되면 단일품종 대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반박도 일리가 있었다.
장 부회장은 경쟁 제품을 달리 잡았다. 다른 회사의 컬러강판이 아니라 이탈리아산 벽지나 대리석을 경쟁자라고 불렀다. 아예 판매 단위를 기존의 톤에서 면적당 단위인 ㎡으로 바꾸는 것까지 고려했다. 영업 대상도 철강 대리점이 아니라 설계사와 디자이너 등이었다.
장 부회장이 디자인에 집중한 건 그의 취향도 한 몫을 했다. 장 부회장은 럭스틸 출범해인 2011년부터 국립발레단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듬해 2012 철강 및 비철금속전에 참석하며 무용과 철의 만남을 주제로 공연을 열었다. 이때 배경이 된 것도 럭스틸이다. 장 부회장은 제품 중심의 전시보다는 이미지를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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