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에코 에너지]광고사 출신 CEO가 20년전 카피에 담은 비전은①오너 4세 박지원 회장, 두산중공업 출범부터 합류…발전기술 '트로이카' 구축한 M&A
허인혜 기자공개 2023-06-01 07:30:40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30일 1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이 처음으로 기업 광고에 나선 때는 2005년이다. 첫 광고 카피는 '지구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지금도 유명한 이 문구는 송출 이듬해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을 받기도 했다. 이 TV CF를 주도한 인물이 다름 아닌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당시 사장)이다.박 회장은 두산 4세답게 프로필을 모두 두산 계열사로 빽빽하게 채웠다. 딱 하나 튀는 이력이 광고대행사인 맥켄 에릭슨이다. '남의 밥을 먹어봐야 한다'는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의 말에 따른 경험이다.
덕분에 두산에너빌리티의 변신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한 줄에 담은 슬로건이 탄생하게 됐다. 지구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이라는 말이 현재도 명카피로 꼽히는 이유는 지금의 주요 화두인 '환경'을 미리 예견한 선견지명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발전 부문에서 국내 톱티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주력 기술은 화력발전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천천히 친환경 에너지로 방향타를 틀었고 201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에코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에 시동을 걸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그룹에 인수되기 전 긴 험로를 걸었다. 본래는 두산의 계열사가 아닌 범현대가에 뿌리를 둔 기업이다. 이후 대우그룹의 손을 거쳐 공기업이 됐다가 민영화가 추진돼 두산 계열사가 됐다. 짧은 글로 요약했지만 다시 민영기업이 되기까지의 세월만 20년에 달한다.
합병 후에도 평탄한 길을 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국 정부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규제에도 민감한 게 에너지 사업인 데다 화력 발전 중심에서 탈탄소 발전으로 급변했던 시기적 상황까지 맞물린 영향을 받았다. 전신인 한국중공업은 당시 국내 발전설비 부문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그때문에 반동도 컸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긴 적자의 터널을 거쳤다.
이처럼 규모 면에서나 난이도 면에서나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장이 녹록지 않은 자리라는 점은 2000년 인수합병 때부터 예견됐다. 박 회장은 한국중공업이 이름을 바꿔 새 출범한 2001년부터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 실장(이사)을 맡아 첫 단추부터 함께한 인물이다. 당시 대표이사에는 삼촌인 박용성 전 회장이, 이사에는 박용만 전 회장이 자리했다.
오너 4세로는 박지원 회장이 유일했다. 박 회장에게 두산에너빌리티 차기 수장을 맡기겠다는 의지로도 읽혔다. 박 회장은 왜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장으로 일찌감치 낙점됐을까.
박 회장은 두산그룹의 4세다. 세대를 거칠수록 물려받을 인물은 많아진다. 두산그룹도 3대만 박용곤 명예회장을 필두로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박용욱 등 6형제에 달했다. 이중 회장직은 거쳤으나 의사의 길을 먼저 택했던 박용현 전 회장이나 두산그룹 밖에서 이생그룹을 일군 박용욱 회장도 자손들, 즉 4세대의 경영참여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었다. 박 회장은 3세대 장남인 박용곤 전 회장의 차남이다.
장손이자 박 회장의 형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1999년부터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에, 2001년에는 두산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있었다. 두산을 박정원 회장이 맡는다면 두산의 핵심 계열사로 부상한 두산중공업을 차남 박지원 회장이 담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때문에 박 회장에게 두산에너빌리티는 곧 본가이자 전공분야다. 후계자가 기업의 새출발부터 함께한 손에 꼽을 사례라서다. 이후 박 회장은 현재까지 두산에너빌리티를 이끌고 있다.
◇해외에서 기술기회 엿본 젊은 부사장
2005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발전설비 전시회 '파워젠 인디아'. 두산에너빌리티는 처음으로 인도에서 대규모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그때만해도 인도는 절반의 가정에만 전기가 들어올 만큼 발전 환경이 열악했다. 반대로 그만큼 성장의 잠재력도 높았다.
이때 주역으로 동행한 인물이 갓 40대에 돌입한 박지원 부사장이었다. 당시 두산에너빌리티가 강조했던 전략은 현지 회사와의 공동참여 등 외부 회사와의 협업과 기술개발이었다.
박 회장은 본 무대였던 두산에너빌리티에서 기획조정실장으로 첫 발을 뗀다. 두산에너빌리티 출범 전 두산아메리카와 두산상사, 두산을 거쳤지만 부사장 직급의 핵심 경영진이 된 건 이때가 처음이다.
기획조정실장이자 부사장으로서 박 회장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전술을 짰다. 중공업, 그중에서도 에너지 관련 사업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만큼 발전기술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천이었다.
기업이 기술을 크게 확장하는 비결 중 하나는 인수합병(M&A)이다. 박 회장도 젊은 시절부터 일찌감치 대규모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하며 기술력을 확보해 나갔다. 과거 두산그룹이 두산에너빌리티 인수전에서도 그랬듯 국내 기업과의 인수합병에 주목했다면 박 회장을 필두로 한 4세 경영진들은 해외 기업에도 눈길을 돌렸다.
◇발전기술 '트로이카' 구축한 M&A 전술
2006년 보일러 원천기술을 보유한 엔지니어링업체 미쓰이밥콕이 두산에너빌리티의 품에 안긴다. 미쓰이밥콕은 보일러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세계 4대 기업으로 꼽힌 곳이다. 화력발전소 보일러 시장의 주력 제품 기술을 두루 갖췄다. 미쓰이밥콕의 당시 연매출 규모는 7500억원 수준이었다.
박 회장은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보일러 원천기술 확보는 필수요건"이라며 "두산중공업의 숙원사업을 달성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두산중공업 주요 추진 전략의 최정점에 있는 과제"였다고 평가하고 "중동지역에 편중돼 있는 해외사업 구조를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였던 두산밥콕의 전신이다. 두산밥콕은 2022년 프랑스 기업 알트라드에 팔렸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천기술 사용 권리를 부여 받았다.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방향타를 틀고 화력발전 포트폴리오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작별했지만 두산에너빌리티 기술력의 한 축을 담당했었다.
대표적인 딜이자 두산가 4세의 첫 번째 대형 딜로 꼽히는 체코 스코다파워 인수전은 박 회장이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사장에 앉은 뒤 이뤄진 인수합병이다. 인수가는 4억5000만유로, 당시 8000억원으로 2009년 9월 이뤄진 딜이다. 이전까지 두산에너빌리티가 진행해온 14건의 인수합병은 주로 3세대 경영인들이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4세대인 박 회장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체코 스코다파워는 터빈 생산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당시에만 100년 전통의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불렸다. 스코다파워 인수전으로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GE, 독일 지멘스, 스웨덴 ABB에 이은 글로벌 4위 기업을 노리게 된다.
스코다파워 인수로 발전 플랜트 3대 핵심 기자재인 터빈·보일러·발전기 원천기술 트로이카를 구축했다. 유럽 최대 발전설비 소재 생산업체인 루마니아의 크베너IMGB 인수도 박 회장의 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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