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13일 07시5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3년 한국에서는 바게트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게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유치원생 꼬마아이부터 60~70대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커피 한 잔에 바게트나 크루아상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어땠을까. 살아보진 않았지만 이 같은 풍경은 꽤나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유학은커녕 해외여행 자체도 보편화되지 않을 시점이라 외국어나 외국 문화 자체가 이질적으로 통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파리크라상'의 탄생 히스토리는 이를 뒷받침해 준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미향씨는 1986년 유럽풍 제과점 콘셉트의 파리크라상을 고안했을 때 내부에서 숱한 반대에 부딪혔다. 프랑스나 크루아상 등 콘셉트도 이질적이었고 브랜드 네이밍 자체도 소비자들이 읽고 기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당시 유명빵집 이름이 고려당, 뉴욕제과 등 ‘OO당’, ‘OO제과’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파리크라상은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후 이씨는 직접 파리크라상 1호점을 운영하면서 사업이 '통한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1988년 론칭한 파리바게뜨가 30년 넘게 이어져 올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지난달 고인이 된 김순일씨는 SPC 초대 여장부로 통한다. 고 허창성 명예회장의 부인으로 1945년부터 두 사람은 SPC의 전신인 제과점 상미당을 운영했다. 주목할 점은 단순 내조가 아닌 사업 파트너로서 진취적으로 경영에 참여해 공동 창업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허 명예회장이 생산관리를 담당할 때 김씨는 원재료 구매, 거래처 계약, 예산 집행 등 경영관리 업무를 도맡아 상미당을 키웠다. 삼립식품(현 SPC삼립) 창립 이후에는 이사와 감사로 경영에 참여해 내실을 관리했다.

SPC에 부는 여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SPC는 올해 초 SPC 각자 대표이사로 강선희 사장과 비알코리아 대표이사로 이주연 부사장을 선임했다. 강 사장은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으로 SK그룹 지속가능경영본부장,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등을 역임한 전문가다.

이 부사장은 현대카드와 스타벅스 등을 거친 인물로 SPC그룹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이 부사장은 식품업계에서 오너가를 제외하고 한국맥도날드 김기원 대표와 함께 유일한 여자 전문경영인 수장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크다.

SPC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 경영인들이 회사를 바꾸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했다. SPC를 지탱해 주는 여풍이 나비효과가 되어 보수적인 재계에 유리천장이 사라지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