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29일 08시0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약·바이오섹터 침체가 길어지고 그야말로 기업들의 서바이벌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선택하는 전략은 '몸집 줄이기'다. 바이오텍 연간 비용 중에 가장 큰 개발비 지출을 틀어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개발 담당 인력을 내보내면 된다.R&D는 곧 기업의 미래지만 지금 당장 혹한기를 버틸 재간이 없으니 자의반 타의반 긴 동면을 시작한다. 2020년 이맘 때 펀딩이 잘 될 때만 해도 연구 인력 품귀현상이 업계를 괴롭힌 걸 생각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만 해도 실력과 경력을 갖춘 박사급 연봉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구인 사이트에 올라오는 박사급 연구 경력자 0명 채용 모집은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우리나라에 박사가 이렇게 많았구나를 실감케 하는 역설의 쓴 뿌리를 씹게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유일하게 품귀현상을 빚는 업무군이 있다. 기업에서 주주나 투자자들을 담당하는 IR 직군이다. 기업 IR 자리엔 재무, 투자자 소통, 사업 전략 등 다양한 경력을 두루 갖춘 인재가 어울린다.
기업에서 고급인력에 대한 니즈가 크니 구인난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수고를 들여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침체된 업계의 굴곡지고 각박한 현실이 핍진하게 투영된다. 코로나19 호황기 대비 섹터 시가총액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지금의 주식장세에서 바이오 IR 담당자의 주 업무는 다름아닌 액받이다. 시쳇말로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가 되는 세태 속. 주가 하락으로 적잖은 주주들은 투자 손실을 볼 위기를 앞뒀다. 투자는 본인 책임이니 누구를 탓하랴. 그러나 울분은 가라앉지 않고 누구를 향해서라도 한 번 퍼부어야 속이나 시원하겠다 싶은 심정을 담아 손끝으로 그들과 소통하는 IR 담당자의 내선 번호를 누른다. 이후 이어질 시나리오는 상상에 맡기겠다.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면서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률도 생겼다. 그러나 IR 직군은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테두리에서도 비껴 서 있다. 현행법상으로도 맹목적으로 이들을 향해 쏟아지는 분노와 욕설을 제재시킬 방법 자체가 없다.
회사라고 다를까. 유선상으로 전해지는 폭언에 대응이라도 할라치면 안팎에서 '감히 우리 회사에 소중한 자금을 투자한 주주에 개길 생각을 하다니'라는 반응이다. 심리 상담을 요청해도 '그러려고 뽑힌 자리니 알아서 해결하시라'는 답변이 전부다.
짧은 글에서 건강한 투자문화 정착을 논하자니 쓸데없이 거창하다. IR 업무를 없애면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알기 어렵다. 상장사와 비상상장사, 빅파마와 바이오벤처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외면하고픈 현실. 돈이 안 돌며 활기를 잃은 바이오 업계를 뒤덮은 어두운 그늘이 자꾸만 어깨를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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