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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어떻게 혁신해야 할까 thebell desk

최명용 부국장 겸 금융부장공개 2023-11-14 08:17:35

이 기사는 2023년 11월 13일 07: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은행들이 반도체나 자동차만큼 혁신을 해서 60조원의 이자수익을 거둔 것인가."

정부 당국의 은행 비판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영업자들이 은행의 종노릇을 한다"는 말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취임 초기 '은행 공공재론'이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종노릇'으로 수위가 높아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혁신을 꺼냈다. 은행들의 이자수익이 과도하다며 얼마나 혁신을 했냐고 지적했다. 횡재세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금융지주 회장들은 대통령 간담회에 호출당했다. 은행들은 상생금융 기금을 앞다퉈 내놓으며 몸을 사리고 있다.

여기서 질문. 앞으로 은행은 얼마나, 어떻게 변할까. 윤석열 정부 내에서 은행과 금융지주 시스템은 획기적인,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까. 예상컨대 적정 수준의 기금이 모이고 상생 메시지는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이 지나면 정부의 압박은 누그러들테고 은행들은 또 변함없이 굴러갈 것이다.

금융권에선 은행 때리기의 목적을 정치적으로 본다. 총선까지만 견디자는 분위기다. 지금의 진단과 솔루션으론 은행의 변화를 유도하기 힘들 듯하다.

자영업자들이 은행의 종노릇을 한 것은 갑자기 착취를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은행은 이자 장사를 했다.

달라진 것은 미국이고 기준금리다. 미국에서 금리를 올렸고 한국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를 지내며 천문학적으로 풀린 유동성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유동성을 줄여야 했다. 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는 시간이 왔다.

금리 인상과 긴축은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더 내고 대출을 줄여야 한다. 먹을 것도 줄이고 소비를 줄인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고 나면 구조조정의 시간이 온다. 경쟁력 없는 기업들과 취약한 산업이 구조조정을 당하고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지난 뒤 살아남은 경쟁력있는 기업들에게 자원을 더 분배한다. 이들이 다시 경제를 이끌고 혁신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다.

한국은 확실한 긴축 모드도 아니고 확장 모드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다. 과감하게 금리를 올려 고통 분담을 해야 하는 시간에 '금리 동결'이란 타협을 했다. 미국이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은 이상한 상황이다. 긴축을 해야 하는 데 다시 대출이 늘고 부동산 가격이 안 잡힌다. 경쟁력을 잃은 산업과 기업들이 좀비처럼 살아 남아 경제의 부담이 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을 줄여 주려면 기준금리를 내리면 된다. 일본은 이 선택을 했다. 아니면 미국처럼 과감하게 금리를 올려 구조조정의 시간을 앞당기는 결단도 필요하다. 이도 저도 결단하지 못하고 엄한 은행에 책임을 돌리는 상황이다.

솔루션으로 던진 화두는 '혁신'이다. 하지만 은행에게 '혁신'을 주문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신이 갖는 의미는 '이익'이다. 이익을 더 내기 위해 변화하라는 게 혁신의 본질이다. 이익을 포기하는, 손실을 내도록 움직이는 혁신은 있을 수 없다.

은행과 혁신을 검색하면 디지털 혁신과 규제완화가 연관검색어로 나온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점포를 없애고 또 다른 이익을 찾아 알뜰폰 사업과 배달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이자이익을 줄이라는 혁신은 비이자이익 추구로 이어진다. ATM기 수수료를 높이고 각종 서비스마다 수수료를 붙여야 한다. 펀드, 보험, 카드마다 수수료가 높아진다. 이익을 줄이라는 혁신은 있을 수 없다. 이익을 줄이도록 하려면 혁신을 주문할 게 아니라 '규제'를 늘려야 한다.

한국의 금융당국은 '금융업'을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 이익을 내는 것을 터부시하고 CEO의 장기집권은 금기시한다. 장기 플랜을 짜지 못하게 하고 이익을 축적하기 힘들도록 한다.

역발상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익을 축적해 해외 은행을 인수하고 몸집을 더 키우도록 육성하는 것이다.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뛰고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진짜 혁신할 방향이다. 해외에서,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도록 해줘야 이자이익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 한국 금융 산업엔 진짜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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