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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 人사이드]"고객 방문 목적 제시 위한 델리 제품 다양화 추진"[롯데마트] 최교욱 델리개발팀장 "은평점 리뉴얼 후 델리 코너 1위 매장 등극"

정유현 기자공개 2024-05-13 07:33:23

[편집자주]

바이어(Buyer)는 유통업계의 꽃이라 불린다. 상품 기획력에 따라 유통가의 매출 지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고물가 한파가 몰아치고 대규모 자본을 등에 업은 중국 커머스가 불을 지핀 유통가의 '쩐의 전쟁'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바이어들을 더벨이 직접 만났다. 바이어의 입을 통해 각 사별 바잉 파워를 살펴보고 실무진의 시각으로 오프라인 강화 전략까지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07일 15: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80년대 이후 혹독한 경제 침체기를 겪은 일본의 경제 상황은 비슷한 산업구조를 형성한 한국과 자주 비교가 된다. 불황이 본격화된 1991년부터 2001년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데, 점차 길어지며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장기 불황에 지갑이 얇아진 일본 소비자들은 '최저가 제품'을 제공하는 대형마트로 향했다.

아시아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월마트가 2010년대 초반 잠시 사업에 탄력이 붙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일본에 매장을 추가로 열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월마트는 질보다 양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도시락을 내놨고 불티나게 팔렸다. 대형마트 델리 코너에서 도시락을 사 먹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 진출 등도 배경이 있었지만 경기 불황에 따라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최근 국내 대형마트의 델리 코너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고물가에 따라 저렴하고 간편한 '가성비' 제품을 찾는 수요가 크지만 10여 년 전의 일본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이커머스의 등장으로 채널 간 경계가 모호해지자 오프라인으로 고객의 발걸음을 향하게 하려는 고차원의 전략이 담긴 점이 다르다. 고객 동선에 맞춰 매장 위치를 바꾸고 품질과 맛을 끌어올리되 가격까지 잡은 식품으로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

대형 3사의 먹거리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롯데마트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롯데마트 은평점에 즉석 조리 식품 코너 '요리하다 키친'과 오더 메이드 방식의 '요리하다 스시', 이색 간편 구이류를 한 곳에 모든 '요리하다 그릴'까지 44m 길이의 '롱 델리 로드'를 구현했다.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볼거리와 먹거리 등을 제공하며 은평점은 리뉴얼 이후 델리 코너 매출 1위 매장으로 등극했다. 고객이 매장에 방문할 명분(reason to visit)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이같은 전략은 적중했다. 향후 국내에서 쌓은 델리 코너 노하우를 해외 지역에 전수하며 K푸드 전파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30-40개 신상품 기획 및 진열 방식 변화 고민, 델리코너 변화 '현재 진행형'

최근 서울시 송파구 롯데마트 본사에서 만난 최교욱 델리개발팀장(사진)은 "각국별로 문화가 다르지만 고객이 마트를 방문하는 목적을 델리에 최우선을 둘 수 있게 전략을 짜면 실적이 좋아지는 것을 알게됐다"며 "고객으로 하여금 마트를 찾아올 리즌 투 비짓(reason to visit)을 제시하는 것이 델리 코너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의 델리코너는 2010년 출시하며 대란을 일으킨 '통큰 치킨'으로 주목을 받았다. 소비자들에게 대형마트의 즉석조리 식품 코너를 각인시킨 가장 유명한 제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 팀장은 "기존 메뉴로는 고객이 방문할 명분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고민했고 메뉴를 점차 추가하다 보니 아메리칸 차이니즈 뷔페까지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물가 시대에 접어들며 델리 코너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지며 대형 3사 마트 모두 델리 코너에 힘을 주고 있다. 과거 수산식품 옆에 자리 잡았던 델리 코너가 매장 앞쪽으로 나오고 있는 이유다. 고객들이 매장의 변화를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델리 코너를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도 조만간 델리 코너를 통해 변주를 시도한다. 최 팀장은 "델리 코너의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고객이 바로 픽업할 수 있는 제품으로 30~40개의 신상품을 기획하고 있다"며 "한 번에 대량으로 신제품을 진열하는 등 기존의 프레임을 뒤집는 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저렴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델리개발팀의 목적이 아니다. 집밥의 완전한 대체를 위해 맛과 품질 모두 끌어올리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델리개발팀이 시장 조사를 통해 식트렌드를 파악하고 제품 기획을 실시하면 2020년 출범한 푸드이노베이션센터(FIC) 세프들과 맛을 위한 치열한 협상의 시간을 보낸다.

최 팀장은 "MD는 제품 개발에 있어 원가와 상품 가격, FIC 센터는 맛을 포기하지 못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간다"며 "프로토 타입을 개발해 시식을 하고 이 과정에서 피드백을 받은 제품으로 품평회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델리 제품 품평회에는 강성현 대표와 본부장급 임원, 주니어·주부 사원, 20~40대 본사 직원 대표 등 약 20여명이 참석한다. 직급과 무관하게 이 품평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의결권은 1명당 1표다. 대표이사 주도로 품평회의 결과가 뒤바뀌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품평회는 가급적 점심 시간에 진행한다. 최 팀장은 "품평회는 수평적인 관계로 각각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 사항을 반영한 신제품이 출시된다"며 "이후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점포에서 4주정도 시판하고, 2주 정도 보완하고 또 4주 동안 제품을 만드는 산고의 과정을 거쳐 델리코너를 통해 소비자와 만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쉐프 소속 FIC 출범 후 맛과 품질 개선, 해외 지역 노하우 전수

FIC가 출범하기 이전까지는 델리개발 팀 내 각각 소속 쉐프가 따로 있었다. 셰프와 협업을 하는 구조라고 보는게 맞다. 이 같은 형태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화되면서 2020년부터 5성급 호텔 출신 셰프 등이 포함된 전문조직이 꾸려졌다. FIC와 델리개발팀은 독자적인 상품 개발뿐 아니라 기존 상품의 레시피 개선을 통해 꾸준히 맛과 품질을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그랑 그로서리(Grand Grocery)'로 탈바꿈한 은평점의 '롱 델리 로드'다.

그랑 그로서리는 매장 공간의 90%를 먹거리로 채운 롯데마트의 차세대 핵심 매장 형태다. 은평점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외로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에는 인도네시아 긴다리아점을 통해 이미 변화를 시도했고 롯데마트의 주력 진출지인 베트남 지역 매장에도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오프라인 경쟁력 강화의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는 델리개발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치킨 파는 곳'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최 팀장은 "델리 코너라고 하면 여전히 치킨, 초밥 파는 곳이란 개념이 잡혀있지만 변화하는 고객의 입맛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제시했고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최근 내놓은 파스타 3종도 반응이 좋은 편이고 FIC와의 협업을 통해 불지 않는 열무 국수 등의 메뉴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끊임없이 다양한 제품을 기획해 인-아웃하는 과정에서 포기 못하는 것은 품질이다"며 "고객이 방문할 수 있는 목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제품을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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